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 짓는 사람 Mar 04. 2021

첫 라디오 , 첫 연애, 첫 밥

슬로스타터에게 가혹한 세상

내 첫 라디오는 에스비에스 낮 방송의 '슈가맨'이라고 명명한 코너였다. 인상 좋은 변호사의 추천과 진행자의 결단이었을까. 경험이 없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사실 위험요소가 많다. 나는 잘할 수 있는 확률보다 사고 칠 확률이 다분히 높은 인물군에 속하지 않았는가. 스튜디오 안에서 낯설어서 굳어있던 내 얼굴보다 그곳이 일상인 사람들의 속이 더 굳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고를 예상하고 언제든지 내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프로페셔널들이기 때문에 그런 티를 안 내고 있는 것일 뿐. 작가들의 우려 속에서 첫 공중파 라디오는 하루 만에 막을 내렸다. 여러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 위로의 행위일 뿐. 사실 누구보다도 더 본인이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돌아와서 다시 듣기를 해보니 나는 진행자와 박자가 맞지 않았고 내가 준비해온 답변을 외우는데 급급했다. 조바심 탓이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조바심. 틀리면 안 된다는 조바심. 사실 잘했으면 이렇게 '인생 실패의 한 꼭지'의 예시로 사용될 리가 없는 에피소드 아닌가.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 시간 즈음부터 초보 장사를 시작했으니 라디오의 경험은 '남들이 보기에는 덜 쓰리게' 좋은 경험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 다시 한번 같은 스튜디오에서 같은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은 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슬로 스타터라고. 이렇게 근사한 핑계가 어디 있는가. 내 문제가 원천적인 것이라니. 운명이 그러했어. 같은 농담이 되지 않겠는가. 인터넷을 찾다 보니 그럴 때 처방해주는 맥박 안정제 같은 것도 있다고 한다. 늘 이런 식이다. 끝나고 방법을 알고오니 말이다. 머리 써서 먹고 살기에는 애초에 글러먹었다.


내 첫 연애는 중학교 3학년 즈음이다. 지금 생각하니 연애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둘 다 짝사랑하다가 2순위에서 억지로 호기심을 자아낸 아이들의 만남" 정도였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누가 더 긴 편지를 쓸 수 있는가에 대해 일종의 대결을 하였으며. 어쭙잖은 팝송 지식을 서로 전달해주는 것으로 그 나이에 걸맞은 정신적 패팅을 하고 있었다. 어느 한날 전화기로 여학생이 먼저 " 야. 우리 올림픽 공원 가자"라고 했을 때 , 내 머릿속에서는 ' 그 넓은 공원 가서 무엇하려고 가자는 것인가. 걷는 거 싫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1차원적이니 참으로 안심해도 좋은 놈이었던 것이다.  올림픽 공원 언덕에는 갈대밭이 있다. 언덕배기를 오르고 있는데 저 멀리 남녀 한쌍이 걸어온다. 여자 손에는 옆 갈대밭에서 꺾은 갈대가 소담스럽게 들려 있었다. '옳커니 , 저걸 해주면 되겠다'라고 나름의 눈치를 보고 , 여학생을 잠시 서 있으라 한 후 갈대밭으로 들어갔다. 아차차 싶었다. 태어나서 갈대를 보기만 할 줄 알았지 갈대밭에 들어갈 일이 없던 차. 갈대밭이 진흙 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때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무릎 정도까지 바지는 젖었고 여학생은 차라리 웃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선명했다. 그날 하루 중 가장 선명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친구를 찾는 유행이 돌 때 즈음, 그 여학생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이름도 흔하고 얼굴은 기억에서 멀어진 탓에 쉽게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나간 자리. 소주 한 병과 먹지도 않는 꼬치구이 안주를 시켜놓고 둘이 할 수 있는 대화는 "그 갈대밭에서의" 기억.  나는 꽤나 멍청한 놈으로 기억되어 있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놈도 되어 있었다. 그때 그 언덕이 데이트 장소인 줄 알았다면 , 갈대밭 공부를 좀 하고 왔겠지.

라고 말하면서 웃고 말았다. 슬로 스타터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조바심이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갈대밭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날 굳이 안 들어갔어도 되는 곳이었다.


나의 첫 밥은 국민학교 5학년이다. 내가 지은 밥 말이다. 첫 밥을 밥솥으로 짓지 않고 냄비에 짓게 된 것은 실과라는 과목에서 밥 짓는 단락이 몇 줄 나와있었던 기억이 주요했던 것 같다. 게다가 보이스카웃을 했으니 고체연료 녹여 쓰는 버너에 코펠을 올려 밥을 짓는 것을 꽤나 많은 이들의 시선 속에서 해내야 했던 것 같다. 쌀이 끓여지고 그 딱딱한 곡식이 뜨거운 물에 충분히 몸을 불리고 한알의 쌀들이 엉키고 설켜 한 그릇이 되고. 그중에 제일 배울만한 가치가 있던 부분은 밥을 끓이고 난 후 중불로 줄이고  다시 약불. 그리고 마지막에 하는 "뜸" 들이기였다. 단어는 읽어냈지만 뜻을 당최 알 수 없었다. 뜸을 들인다. 밥을 먹기 전 요식행위인가. 굳이 뜨겁게 끓여놓은 쌀알을 왜 식히는 것인가. 냄비 안의 대류 된 열기가 밥으로 들어가 쌀알의 겉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씨앗의 근본이 되는 살 부분은 부드럽게 또는 풍만하게 부풀리는 것. 뜸 들이기가 있어야 밥이 단호해진다는 것을 몰랐다. 나의 모든 실패들은 내 성정의 문제였다. 결정적 순간에 나온 조바심들이 결국 결과를 망쳤다. 뜸을 들이는 것을 못했기 때문이다. 한소끔 가라앉힌다. 한 김 빼고 간다. 재능이 없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뜸을 들이는 것. 그랬으면 나의 첫 번째로 기록된 실패들도 그 횟수가 줄었을 텐데. 

뜸 들이기만 잘해도 도정 후 몇 년 되어 바스락 말라버린 쌀에게도 밥이 될 기회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성정의 문제다. 밥 짓기의 문제다.

작가의 이전글 당구 노조  그러나 토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