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면에 살던 아이였다. 가끔은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기도 하고. 가세가 기울기 전에는 아버지의 술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술지게미를 심심한 입에 넣다가 논두렁 어귀에서 잠들어 버리기도 했다.
여자는 그저 언문이나 읽을 줄 알면 다 된다고 생각한 그때의 이야기에 따라 국민학교만 나오고 중학교는 다니다가 집안일을 하라고 배웠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집안에서 가장 똑똑한 막내가 고등학교를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심으로 박수나 쳐주던 그런 무지렁이였다. 그러다가 집안사람들 몰래 서울에 올라왔다. 일을 배우고 싶었다. 나이는 여전히 많지 않았다. 잘 배운 애들은 여전히 학생인 나이였다.
서울역 앞 ,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큰 건물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일탈은 오래가지 못했다. 큰오빠에게 잡혀서 다시 주산면으로 돌아갔다. 지루한 그곳이었다. 네 칸짜리 집에서 또 쇠죽이나 끓이고 있어야 했다. 다시 도망 나왔다. 다시 서울이다. 구로공단에 도착했다. 가발공장이었다. 사람의 긴 머리를 받아 한 땀 한 땀 망에 걸쳐 묵묵히 가발을 심었다. 주산면 어린 소녀의 손을 걸친 가발은 배를 타고 물을 건너갔다. 한 땀 한 땀 시절을 새겨갔다.
2010년 봄이었다. 전국 지자체 축제 영상을 받으러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연고 없는 동네에 도착했다. 어색한 웃음을 몇 번 연습하고 홍성군청 홍보과에 들어갔다. 공무원이 받아도 되는 수준의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갔다.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원래 하던 거래처였으니까. 새로울 것 없는 미팅이 끝나고 낯선 동네 낯선 모텔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할 일이 없었다. 티브이를 틀고 혼자 앉아서 맥주나 마시고 있어야 했다. 내일은 강원도로 가야 한다. 대충 동선을 계산하고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보니 남당항 대하축제 영상이 나온다. 갑자기 집에 혼자 계신 엄마가 생각났다. 출장을 많이 다녔어도 전화를 먼저 한적은 없었는데. 이 동네는 엄마가 아는 동네 같았다.
“여기 홍성인데 머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사갈께”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운전 조심하고 잘 돌아오라는 말. 하긴 요즘 서울에서 못 사는 게 어디 있다고. 괜스레 머쓱해졌다. 평소에 전화도 안 하면서 별... 전화가 울린다. “ 거... 머더라?...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작대?.... 장대인가...? 아... 맞다... 서대... 혹시 거기 서대 팔면 그거 사 와봐. 엄마 어릴 때 먹던 건데 서울 와서 못 먹어봤네...”
시장에 갔다. 서해 낚시를 그렇게 다녔어도 서대라는 생선을 본 적 없는 걸 보니 나도 참 어설프다.
서대. 참 밋밋하게 생겼네. 이걸 찾다니 충청도 아줌마 참. 서울 도착하는 날에 맞춰서 택배를 부탁했다. 싸기도 싼데 생긴 것도 참 밋밋하다.
5일 후 서대가 도착했다. 그냥 엄마한테 드렸다. 알아서 드시라고. 저녁밥상에 서대 구이가 올라왔다.
먹어보니 참 심심한 맛이다. “이거 원래 이렇게 먹는 거야? 되게 심심한데? “ 엄마는 이게 맞다고 하면서도 “음. 할머니가 해주던 조림은 생각이 안 나서 그냥 구웠어”
밤에 보고서를 쓰다가 부엌에서 소리가 나길래 문을 살짝 열어봤다. 엄마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서대를 바라보고 있다. 갸우뚱 한 모습으로. 한점 다시 먹어보고 다시 고민에 빠진다. 갸우뚱.... 맛이 기억 안 나는듯하다. 할머니를 기억하는 건지 , 주산면 그 논두렁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 그때 그 시절의 서대는 지금 눈앞에는 없다. 서대는 그때처럼 심심하게 생겼는데. 하릴없이 시간만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