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의 마을
커다란 무를 가마솥에 넣고 삶는다. 삶는 동안에 가마솥에 어울리지 않겠지만 고기 몇 점을 같이 넣어 삶는다.
통으로 집어넣은 무가 그야말로 푹 삶아질 때까지 시간을 보낸 후, 젓가락으로 푹 하고 찔러본다. 속까지 그윽하게 익었다면 젓가락은 뜨거운 김을 내며 쑤욱하고 빠질 것이다. 무를 꺼내 찬물에 잠시 담가 겉의 뜨거움을 식힌다. 그리고 무 한 개씩 꺼내 물에 젖은 한지로 한 개씩 감싼다.
무의 차가운 겉에 한지가 잘 달라붙을 것이다. 화전민은 무를 집어 들고 눈 덮인 산을 오른다.
겨우내 먹을 것이 없어 참으로 가여운 삶을 살고 있는데 ,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들개들이 화전민들 모여사는 골짜기로 내려와 몇 마리 안 되는 닭을 물어가고 솥을 뒤진다. 들개들도 가여운 삶이지만 어찌 화전민의 목숨을 핥으려 하는가.
약초 바구니에 들고 간 한지 품은 무를 꺼내본다. 개들이 달려들기 좋은 널찍한 바위 위. 나무 등걸이라도 얽혀 있으면 화전민이 다녀간 흔적이 덜 보일터. 한지에 겹겹이 싸놓은 무 덩어리를 바위 위에 올리고 늙은 화전민은 볕이 지는 길을 따라 내려온다.
잠시 후 구름길 따라 빛이 사라지면 개들이 나타날 터 ,개들은 필시 '고기 냄새 물씬 나는 덩어리'를 찾아 달려 내려온다. 한 덩어리씩 떨어져 있으니 평소와 같이 얼어붙은 가죽에 피맛이라도 보려 주둥아리끼리 설키지 않아도 좋다. 한 덩어리씩 사이좋게 나누니 마치 돼지라도 추렴한 듯 조용해질 것이다. 개들은 냄새를 믿고 눈으로 본 덩어리를 믿고 앞니로 무를 물어댈 것이다. 그리고는 차마 혀가 닿아 고깃국물의 맛을 스치기도 전에 빠지지 않는 무 덩어리를 한 개씩 물고 근처 등걸 사이로 뒹굴 것이다.
아차 했다. 냄새도 고기 냄새요. 덩어리도 마치 인간 마을에서 훔쳐온 그것과 같았는데, 하물며 겉은 차갑기까지 했는데. 속이 뜨겁다. 뜨거워서 이를 빼려 대가리를 미친 듯이 저어 대지만 개 대가리에서 빠져나오는 건 속이 설설 끓는 삶은 무와 들개의 이빨이다.
개들은 굴러 입을 식힌다. 이제 골짜기 마을로 가서 닭을 물려해도 물고 돌아올 입이, 아니 이빨이 없다. 미물이라 장탄식도 뱉지 못하고 침과 피만 흘린다. 배곯았던 것이 그다지도 악한 일인가. 들에 사는 것이 이렇게도 망할 짓인가. 개들 잡으러 오는 것이 비단 인간뿐은 아니지만, 차라리 한두 마리 제상에 내주고 비굴하게 빌며 도망치던 늑대 앞에서도 이리도 슬프지는 않았다. 몰려다니면서 토끼나 쥐를 배불리 잡았으면 개들도 골짜기를 탐하지 않았을 터. 나무줄기를 핥아 데인 입을 식히고 나니 개들은 더 이상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탐할 재주가 없으니 말이다.
골짜기에 해가 지고 나기를 몇 번, 늙은 화전민은 얼지 않은 계곡 아래에서 물속에 대가리를 박고 죽은 들개 한 마리를 들어 치웠다. 개는 이빨이 듬성듬성 없었다. 얼어버린 개 대가리를 뒤쪽 마른 등걸 위로 던지고 계곡물에 피가 흘렀는지 맨 돌을 고르고 내려간다. 하필 화전민의 마을이다. 들개 몇 마리에게 개밥으로 줄 찌꺼기도 박한 곳에서 개들만 죽어나간다. 주린 배는 똑같은데 개들부터 죽어나갔다.
그림으로 봤던가, 그림 없이 글로 봤던가. 개 잡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필 화전민 마을이었다.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들개라서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했을 수도 있겠다.
닭 잡아가면서 으르렁 대고 , 사람 물려고 달려들고. 만약 길들여졌더라면 이빨을 뽑히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려나? 아니다. 개를 삶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화전민 근처에는 가는 것이 아니다. 박한 삶에는 손을 내밀지도 근처에 가지도 말자. 내버려두고 주변을 돌면 먹지 못한 화전민의 잇몸이 무너지고 독한 풀뿌리 삶아먹다가 잇몸 다 드러내며 먼저 이빨 빠져 죽을 것이다. 헛배 불러 죽어갈 테니 그때쯤 다가가서 핥아주며 위안해줘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들끼리 정 주지도 못하고 넘나드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