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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Feb 03. 2022

고속도로 귀성길

은희경"새의 선물"이 읽힌 곳

6월은  뜨거운 달이다. 벌이를 위해 일하는 곳이 냉난방의 경계가 없는 공장 건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터.  

박스 공장 한구석에 약간은 비스듬히 쓰러져가는 플라스틱 화장실. 계단 두 칸을 딛고 올라가서 문을 연다.

 영화 “도그마”에서 나오는 작은 전화부스 같은 곳. 그 안에서 낮에 볼일을 보려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조명의 전부를 차지하는 햇볕이 문제다. 안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면 호흡이 힘들어진다.

 화장실이 놓인 곳 뒤편은 박스를 시아기 치고 남은 파지들을 모아놓은 언덕. 그 언덕에 비가 몇 번 오고 마르고를 반복하다 보면 종이의 텁텁한 향이 화장실의 암모니아 냄새를 누른다. 역하지 않지만 공기의 무게감이 상당해졌다. 어차피 역한 곳이니, 일을 빨리 끝내는 것도 좋지만, 어디 맘 같은 곳인가. 그곳에서 뜨거운 볕으로부터 구원받으려고 화장실 벽에 걸어놓은 책이 한 권 있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 화장실에서 읽기에는 중량감이 있는 책이다. 장르의 중량감이 아니라 책 자체가 한 손으로 들고 집어 넘기기에 적합지 않은 사이즈였고 글자크기였다.


내가 돌리던 도무송 기계는 공장 소음의 반 정도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인쇄기와 다른 박스 절단기. 

한번 켜놓은 도무송은 잠시 화장실을 간다고 쉬이 끌 수 없는 기계다. 잠시 대기로 바꿔놓고 내일을 마치고 빨리 오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런 관계도에서 “새의 선물”은 이탈 활자 같은 것이다. 차라리 핫윈드 같은 도색잡지가 있었으면 아무 생각 없이 두어 페이지 넘기다가 다리에 쥐가 나기 전 일어나면 되는데, ‘선명한 빛이 들어와 …. 날카롭게….. ‘ 같은 느낌의 공간 설명이 이어지면 텁텁한 공기도 이겨내는 집중력이 생겨 화장실에서 장투(장기투쟁이라고 하자)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기계가 공회전으로 돌고 있으면 낭비다. 사장이면서 친구인 놈이 도무송을 대신 돌리게 되면 가뜩이나 미숙공이라며 월급 책정을 탐탁지 않아했던 사장 친구 확신에 도움을 주는 바. 

빨리 이 좁은 공간에서 나가는 것이 여러모로 자존감을 유지하는 길이다. 그러나 “새의 선물” 덕분에 매번 실패다. 그렇게 명문의 글이라면 들고나가 퇴근 후 집에서 읽어도 되는 것. 혹은 공장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시원한 판지 위에 앉아 읽어도 되는 것을. 굳이 반평도 차마 안 되는 종이 썩는 내가 가득한 곳에서 읽겠다고 버티는 꼴이라니.   

결국 새의 선물은 화장실에서 다 읽혔다. 쨍 한 표현의 반복, 잘 정돈된 다락방 구경 같은 줄거리, 내 인생도 저렇게 정리정돈될 수 있을까 하는 하릴없는 바람. 

한 손으로 읽는 것이 손에 익을 무렵이다.  여름이 크게 지나가면서 비를 내렸다. 공장에서 먹고 자는 인도네시아 인 “아딘”의 집이 무너졌었고, 공장 바닥이 한번 쓸려나갔다.

아! 아딘. 긍정적인 친구였다. 사장의 일관성 없는 업무지시와 야근에도 도망가지 않고 불체자의 신분을 잘 유지하던 친구. 덕분에 인도네시아 식 닭도리탕도 먹어봤다. 고무공보다 탱탱하게 닭고기를 졸여놔서 먹는 시늉을 하는 것만으로도 곤혹스러웠던 기억.아딘의 자상함으로 탱탱한 닭고기 볼 먹는 척을 해야 했다. 아딘은  한 달에 140만 원을 벌어 백만 원을 가족에게 보냈다. 어느 한날 가족사진을 보여줬는데 무려 8명의 대가족이 함께 웃는 사진이다. 가족들은 아딘의 수입만으로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아딘은 자기 나라에서는 치과의사였다. 한 달 수입이 40만 원 정도였는데, 우리 아버지들처럼 좀 더 잘 살기 위해 한국에 와서 안산공단부터 거치고 거쳐 이곳 곤지암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딘은 한국말을 잘했다. 게다가 영어까지 가능하니 일하면서 아딘에게 영어 과외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귀중한 자원이었다. 가족에게도 우리에게도. 뭐 우리도 가족이라고 우겨댔으니 모든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와는 달랐다.


 화장실 천장 환기구로 여러 차례 들이닥친 장맛비 때문에 책이 물에 붇고 붙었지만 , 결국 그 여름에 그곳에서 다 읽혔다.  그런 책들이 있다. ‘다락방에서 작은 불빛이 있을 때 잘 읽히는 책.’ 그런 책들이 있다. 

고속도로를 통해 곤지암을 통과할 때다. 산도 깎아버려서 경치가 다르다. 대충 추정컨대 저 즈음 어디일 것이다. 창문을 열어놨는지 이십 년 전, 이 길과 멀지 않은 곤지암 산골동네. 여름 날씨에 공장 한구석 파지가 젖고 다시 말라가던 그 공기가 , 그 냄새가 슬쩍 차 안으로 들어왔다. 골판지 돌가루 냄새가 날 때  , 화장실에서 책위로 쏟아지던 볕. 챙겨놓은 기억들이 몇 개 없는데 그중 되짚어 봐도 될만한 기억이다. 


오늘 귀가 길 고속도로에 그때 곤지암 공장 길이 걸려 있었다. 어디든 가는 곳이 길이니까. 별것 없는 청춘 기억에도 접도 되어 있는 길이 있다. 별거 아니라서 별 인생 아니라서 별스럽게 포장하고자 세밀한 척하면서 복기해본다. 물론 복기의 대부분은 틀렸다. 그 시간들이 형편없다고 한다면, 민달팽이에 소금 뿌려진 것처럼 꿈틀거리면서 창피해 죽을까 봐.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선에서 왜곡 중이다. 그럴싸한 것이 없다면 가난하게 신문지 포장해서라도 말이다. 짐짓, 가난도 팔아보려 말이다.    은희경”새의 선물” 중 주인공은 12살에 다락방에서 도색잡지를 읽었다, 내 도색잡지의 기억이 네 살 정도 빨랐다.나도 다락방이었다. 내 공기가 더 쿰쿰했을 것이다. 내 책이 더 낡았을 것이고, 내 시간이 더 무료했다. 새의 선물에 살포시 한 줄 얹었다. 엉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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