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나는 집콕 생활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중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이 어디 가자 제안하여도 "난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집 안에서도 요즘은 참 할게 많다. 핸드폰 게임부터 컴퓨터에 독서를 해도 되고 TV를 틀면 뛰어난 PD가 머리를 쥐여짜내가며 만든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특히나 그 시절 나는 게임 원화가가 되고 싶다 생각할 정도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 떨어진 곳에서 산다. 그렇다고 너무 먼 것은 아니고 마음 먹으면 언제든지 당일치기로 만날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 좀 두껍게 입고 나오지 그랬어."
아빠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답했다.
"여름인데 뭘 그리 두껍게 입어? 이정도도 충분해."
내가 늦게 본 첫 째인지라 아버지와 내 나이 차이는 서른 살보다 좀 더 날 정도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아버지의 노화가 눈에 잘 들어왔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시고 술도 마신다. 선조의 이력을 살펴보면 폐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계셔서 걱정이 안될 수가 없다.
공원의 경치는 좋았다. 쇼핑도 아니고 그저 자연 경관을 구경하는 것일 뿐인데도 즐거웠다. 짧은 아치형 돌다리를 지나갈 때는 그 밑에 숨은 잉어를 찾았고 연꽃잎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물오리를 바라볼 때면 오리가 잉어를 삼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공원에는 어르신이 많이 오신다. 그만큼 중간중간에 휴식할 수 있는 벤치를 많이 놓았다. 저혈압으로 간혹 길을 가다가 어지러움을 겪을 때 나는 벤치를 찾았다. 그리고 오늘도 벤치를 찾아 앉아 숨막히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짝 빗겨 지나갔다.
공원에는 예술가가 있었다. 이젤을 세워놓고 캔버스에 붓을 칠해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는 세 명의 화가를 보았다. 그들의 캔버스에는 같은 경치를 보았으나 각기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색이 조금 다르며 빛의 산란을 표현하는 기법도 다르다. 세상은 다양하다.
공원 곳곳에는 조경수와 함께 작은 볼거리가 마련됐다. 전통 건축양식을 따른 이 목조 건물도 그렇다. 오늘은 올라가보지 못했으나 아래에서 올려다본 고상한 색에 나는 매료됐다. 조상님들은 과거의 색이 사라지고 회색 건물만 남은 요즘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탄식하실까? 혹은 높은 건물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소공포증을 느끼실까?
백수여야 보이는 세상이 있다. 이는 자유로움이다. 평일 오전의 고요한 거리를 걷고 오후에 주차장이 널널한 건물에 들어가 느긋하게 소통하는 매력을 알려준다. 만약 내가 백수가 아닌 엊그제처럼 돈 걱정은 없지만 맞지 않은 옷에 입은 것처럼 갑갑한 회사생활을 마저 했다면 알 수 있을 행복일까?
이제 알겠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왜 산책을 좋아했는지. 계절마다 변하는 꽃을 보고서야 계절이 체감된다. 색색의 단청을 보고 나서야 찬란한 색감을 알게 된다.
나는 내가 직장에서 빠져나오며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으나 돌이켜보면 잃은 것은 없다. 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온전한 내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