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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담 Oct 30. 2022

ADHD 2

  우리는 놀이방처럼 보이는 한 공간으로 선생님과 함께 들어섰다. 방 한쪽 벽면 전체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으로 구성이 되어있었고 중앙엔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지율이는 본능적으로 장난감 쪽에 흥미를 보였지만, 선생님의 명에 따라 책상에 앉아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표정을 보니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우리 동그라미 그려볼까?"


"동~그라미!"


  지율이는 내가 평소 동그라미를 그려줄 때마다 하던 '동~그라미' 억양을 그대로 따라 하며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후, 세모와 네모를 연달아 그렸는데, 분간이 되질 않았다. 나는 이런 사소한 것까지 거슬릴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지율이를 찬찬히 살피시던 선생님은 엄마인 나와  둘이 얘기하길 원하셨고, 지율이와 아빠는 대기하기 위해 바로 옆에 놀이방으로 떠났다.


"ADHD 아니에요. 어머님. 실제 ADHD인 아이들은 훨씬 산만해요. 지율이는 분명 저 장난감들을 보고 흥미를 보였잖아요? 근데 제가 같이 그림 그리자고 하니까 참고 그림 그린 거 보세요. 정말 ADHD였다면 제 말 안 듣고 벌써 장난감 다 꺼내고 있었을 거예요."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지옥 같은 나날들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ADHD라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정말 별 짓을 다했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동영상 촬영해서 하루 종일 돌려보기도 하고, 종일 'ADHD'를 검색하며 울었다.


  결국, 신랑과 둘이서 이틀 끙끙 앓다가 검사 예약 날까지 참지 못하고 양가 가족들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하나같이 다들 아니라고 했다. 지율이가 활동적인 것은 맞으나 ADHD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친정엄마는 그 말을 듣고 저녁 먹은 게 체해서 밤에 잠도 못 자고 새벽 2시까지 고생하셨다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지율이 고모는 원래 아이들은 그 나이에 다 산만하고 충동적이라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아이 둘을 양육하고 있는 육아 고수인 우리 언니도 펄쩍 뛰며 고모와 같은 말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랑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런 말을 꺼낸 아이 담임 선생님에게 말이다. 나도 처음엔 화가 났지만,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화난 감정은 뒷전이었다. 부모와 충분히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게 상담 내용이었다.


  언니랑 며칠 전 통화했던 게 생각났다. 언니가 작은 조카를 임신해서 힘에 부치다 보니 큰 조카를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집에 무슨 일이 있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언니는 결국 많이 신경 써주고 사랑해주는 것 밖에 없다며 나에게 답을 줬다.


  난 너무 화가 나면 가끔 지율이에게 '너 엄마 말 너무 안 들어서 이제 지율이 엄마 안 할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그 말을 들으면 더 크게 울곤 했었다. 언니는 나에게 그런 말은 아이에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순간 지율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모자란 엄마 때문에 아이는 상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자라면 자랄수록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그런 부분에선 육아가 좀 수월해지지만, 동시에 아이는 자아도 함께 성장을 하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에 양육자들은 부딪친다. 삐져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며 아이의 성난 '감정'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습관을 완전히 버렸다. 지율이가 떼를 쓸 때마다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다. 못난 감정들을 주워 담는 더러운 쓰레기통이다.'라고 생각하며 이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 줬다. 그러자 떼를 쓰는 빈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어린이 집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나 하나 바뀐 것뿐인데, 주변 모든 것들이 정리정돈 된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역시 '키'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육아는 엄청난 책임감을 요하는 일이다.


  다음 , 신랑은 직접 어린이집에 상담을 신청했다. 이번 일을 빌미로 선생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다. 상담할   말들을 신랑은 하나하나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표정이 제법 진지한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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