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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담 Oct 30. 2022

평생 넘지 못할 허들

평소와 같이 아이 등원을 위해 차에 올랐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지율이는 뒷좌석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쯤, 지율이가 배가 아프다고 울부짖었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지율이 옆으로 가 배가 많이 아프냐고 물었다. 그 순간 지율이는 토를 했고, 우리 둘은 토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놀란 지율이는 울기 시작했고 토가 묻은 옷을 벗으려고 버둥거렸다. 나는 얼른 아이 옷을 벗겨주고 토를 닦아준 뒤, 꼭 안아줬다. 


"지율이 오늘 컨디션이 안 좋구나. 오늘은 집에서 쉬자."


아이를 달랜 뒤, 운전석으로 돌아가 집으로 향했다. 토를 한 지율이는 속이 편안해졌는지 쌔근쌔근 잠들었다. 내복 차림으로 카시트에서 새우 잠자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지율이는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그저 투정으로만 받아들였던 내가 엄마 자격이 있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토가 묻은 옷들을 바로 세탁했다. 미처 뒤처리를 하지 못한 차는 신랑에게 말해 업체에게 맡기게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바로 소화가 잘되는 흰 죽을 후딱 만들었다. 아이 손과 발의 온도를 알기 위해 손으로 만져봤다. 평소와 다르게 냉기가 느껴져서 바로 손을 따줬다. 시간이 좀 흐른 뒤, 다시 아이 손과 발을 잡아보니 따뜻했고 컨디션이 좋아진 지율이는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약간 서두르며 먹었던 아침이 체했던 거 같았다.


의연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나를 보며 워킹맘 2년 차임을 확실하게 느꼈다. 만약 복직 직후였다면 신랑한테 울먹이며 전화하고, 일하는 엄마인 나 때문에 아픈 거라 자책하며 차량 뒷좌석에서 지율이랑 같이 목 놓아 울고 있었을 것이다. 


복직 직후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난 아직도 지율이가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돼서 3일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그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날 밤 11시까지 지율인 계속 칭얼거렸다. 단순 잠투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구토를 하는 지율이를 보자마자 신랑과 나는 너무 놀라 벙쩌있었다. 지율이는 물만 마셔도 바로 토했다. 먹는 족족 다 게워내는 아이를 담요로 칭칭 감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우린 밤을 꼬박 세운 뒤, 집에 올 수 있었다.


의사는 아이에게 한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말라고 했다. 구토 증상이 너무 심했던 지율이는 아무것도 먹질 못해, 굉장히 배고파했다.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탈수 증상이 온 아이는 결국 입원을 했다. 신랑과 나는 번갈아 가며 하루씩 휴가를 썼지만, 결국은 엄마인 내가 계속 병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지율이가 극도로 엄마만 찾았기 때문에 아빠는 케어가 거의 불가능했다.


지율이가 입원한 3일 동안은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응급실에서 밤을 꼬박 새운 것까지 더한다면 총 4일이다. 나와 신랑은 4일 동안 단 한순간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수면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에서 나는 다시 출근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정말 너무 힘들어서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직장을 다니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모르겠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해 힘든 줄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가끔 주변에서 사람들이 묻는다. 맞벌이 힘들지 않냐고. 어떻게 버티냐고. 그런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처음엔 남들처럼 그만두려고 했었지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삶은 앞으로 더 힘든 일의 연속일 텐데, 지금 눈앞에 놓인 이 '허들'을 넘지 못한다면 이 정도 높이가 되는 허들은 앞으로도 평생 넘지 못할 것 같았다. 청춘인 30대일 때도 넘지 못한 이 허들을 40대, 50대가 된다고 한들 넘을 수 있을까? 난 자신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 겁도 많아지지 않는가. 넘으려거든 지금 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난 지금 레벨 업 중이야.'


이 허들을 넘기 위한 인생의 '레벨 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버텨졌다.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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