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

“보이지 않는 달러의 그림자 — 순대외금융자산과 원화의 숙명”

by Dr Sam

작년 겨울, 나는 광화문 한복판의 작은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 가격은 6,000원.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미국의 한 식당에서 17달러(약 22,000원)에 팔리던 짜장면을 5달러도 안 되는 값에 먹은 셈이었다. 그런데 올해 가을, 원·달러 환율이 1,435원을 돌파했다. 동시에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인 4,000선을 넘어섰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매수세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데,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사려면 당연히 원화를 사야 한다. 즉, 원화 수요가 급증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환율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달러는 하늘로 솟고 있다. 이 모순된 장면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이중주’를 보여준다.


순대외금융자산의 시대

2024년,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Net 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 이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이 외국에 보유한 금융자산은 2.49조 달러,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한 금융자산은 1.39조 달러,

그 차이가 +1.1조 달러다.


이 말은, 한국은 이제 세계에 돈을 빌려주는 나라, 즉 ‘순채권국(creditor nation)’이 되었다는 뜻이다.
불과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에 195억 달러를 빌려야 했던 나라가, 27년 만에 세계에 1조 달러를 빌려주는 나라로 변신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원화는 여전히 약세다.
그 이유는 바로 돈의 흐름이 ‘투자’의 형태로 나가지, ‘거래’의 형태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달러를 향한 심리 — 한국인의 미국주식 사랑

2024년 기준, 한국인의 해외 금융자산 중 45.9%가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의 개인 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은 테슬라·엔비디아·팔런티어 같은 미국 주식을 꾸준히 매입한다. 한국 증시가 아무리 올라가도,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히 월가로 향한다. “노후는 달러로 지켜야 한다”는 무의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 현상은 단순한 투자 선호가 아니다. 미국 주식을 사기 위해서는 달러를 먼저 사야 한다. 즉, 한국의 부(富)가 달러로 환전되어 빠져나가는 구조다. 외국인들은 코스피를 사면서 원화를 사고, 한국인들은 나스닥을 사면서 달러를 산다. 결국 서로 다른 방향의 힘이 충돌하면서도, 환율은 달러 쪽으로 기운다.


스테이블코인 — ‘디지털 달러 제국’의 문이 열리다

올해 6월, 미국은 세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핵심은 “연방정부의 승인 아래 민간 기업도 달러 기반 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것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달러 패권의 디지털 확장 전략이다. 만약 애플이 ‘애플코인’을 발행하고, 아이폰을 그 코인으로 구매하면 20%를 할인해 준다면? 테슬라가 ‘테슬라코인’으로 결제할 경우 25%를 할인해 준다면? 전 세계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의 코인을 보유하려 할 것이다. 달러의 변신이다. 종이에서 카드로, 그리고 이제는 코인으로 진화하는 달러. 그날이 오면, 한국을 방문할 때 원화를 환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광장시장의 떡볶이도, 서울 하얏트호텔의 숙박비도, 지하철 요금도 “애플코인”이나 “아멕스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미국발 스테이블코인의 파급력이다 — 금융의 국경이 사라지고, ‘화폐의 주권’이 플랫폼으로 이전되는 순간.


원화의 미래 — 세종대왕의 얼굴이 사라지기 전에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원화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 경제가 글로벌 플랫폼에 통합될수록,
결제 수단으로써의 원화는 점차 ‘국내 한정 통화’로 축소된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현대판 국채보상운동” — 한국판 스테이블코인(KRW Stablecoin)의 시대다. 정부와 금융기관이 함께 원화 기반의 블록체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 국내 경제의 결제 생태계를 디지털 원화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만 원권 속 세종대왕의 미소는 언젠가 디지털 월드 속에서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달러, 그리고 그 그림자 같은 코인들이

우리 일상의 모든 거래를 지배할 테니까.

환율의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국가의 심리, 투자의 방향, 화폐의 철학이 녹아 있다. 한국이 순대외금융자산 1조 달러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자부심이지만, 그 자산이 모두 달러 기반으로 운용되고 있다면

그 부는 결국 달러의 무게추 아래 놓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고환율은 어쩌면 미래의 금융질서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호’ 일지 모른다.


달러의 바닷속에서 원화의 배를 어떻게 띄울 것인가

그것이 대한민국 경제가 맞닥뜨린 21세기형 철학적 과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