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9:9-10
9 시온 백성아, 기뻐하여라. 예루살렘 백성아, 즐거이 외쳐라. 보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구원하시는 왕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타신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10 "내가 에브라임에서 전차들을 없애겠고 예루살렘에서 말들을 없애겠다. 전쟁에서 쓰이는 활들은 부러질 것이다. 그 왕이 나라들에게 평화를 말할 것이다. 그의 나라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미칠 것이다.
성경은 역사의 종말을 예고한다. 특히 예수는 종말의 징조를 전쟁, 천재지변, 이단의 미혹, 해와 달, 그리고 별의 몰락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1) 이렇게 강렬한 세상의 마지막 모습 때문일까? 일반적으로 종말은 파멸, 환난과 같은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환난은 종말의 일부일 뿐, 이를 넘어선 구원과 회복을 제시한다. 이 기쁜 소식을 함께 읽어보자.
오늘 말씀의 9절은 일차적으로 예수의 초림을 예언한 구절이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힘 잃은 자신들을 다시 강성하게 해 줄 메시아(구원자)를 원했다. 기나긴 포로 생활 속, 유대 민족이 그린 구원자는 강력한 말과 전차를 탄, 힘을 상징하는 왕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스가랴는 메시아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선포한다. 놀랍게도 이 선포는 마태복음에서 이뤄진다.
4 이것은 예언자가 말한 것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5 "시온의 딸에게 말하여라. '보아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겸손하여 당나귀를 탔는데, 어린 당나귀, 곧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6 두 제자들이 가서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했습니다. 7 그들은 당나귀와 그 새끼를 데리고 와서, 그 등에 자기들의 옷을 깔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위에 앉으셨습니다. - 마태복음 21:4-6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우리도 왕이라는 존재를 힘과 카리스마와 쉽게 연결하곤 한다. 그런데 나귀 새끼 탄 왕이라니.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초라함의 이유를 그의 겸손함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우리의 상식이 깨진다. 예수는 대적을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는다. 설마 하나님의 독생자가 천사로 이뤄진 군대를 부를 수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대신에 그는 겸손히 스스로 낮은 자리로 내려온다. 자신을 미워하는 원수까지 포용하기 위해. 모든 핍박을 감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다시 말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기 위해. 이것이 놀라운 예수의 통치 방식이자,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다.
이러한 통치 원리가 역사의 끝에 어떤 나라를 가져오는가? 왕은 가장 먼저 전쟁 도구를 부순다. 이는 단순히 싸움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다. 전장을 누비는 전차와 말이 없어지고, 서로를 겨누는 활도 사라진다. 고대 사회에서 전차와 말, 활은 힘과 정복의 상징이었다. 이를 없앤다는 것은, 힘의 논리라는 세상의 질서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선언이다. 즉 전쟁이 사라지고, 그 전쟁의 씨앗이 될 만한 모든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사라진 공포와 두려움의 자리에 사랑과 겸손이 깃든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평화, ‘여호와 샬롬(Shalom)’이고,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다.
*크리스천 사이에서 인사로도 통하는 ‘샬롬’은 ‘여호와는 평화이시다.’라는 의미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갈등을 겪는다. 마음이 맞지 않아 타인과 다툴 때도 있고,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을 때도 많다. 여유를 유지하려 하지만, 속 시끄러운 일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정신을 헤집어 놓는다. 마음을 달래려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러니 타인을 짜증과 증오로 대하기 부지기수다. ‘샬롬’이 필요한 시기다. 어쩌면 갈등이 우리 삶의 기본값일 수도 있다. 삶의 기본값은 삶의 주인만이 바꿀 수 있다. 우리 삶의 주인을 예수로 인정한다면, 그에게 평안을 간구하자.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하자. 이번 한 주, 당신의 삶에 샬롬이 깃들기를 기도한다. 아멘!
· 참고 : <생명의 삶>(두란노)을 기준으로 드리는 가정예배입니다. <생명의 삶>을 함께 사용하시거나, 아래 링크를 같이 이용하시면 더욱 풍성한 나눔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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