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여러 자유를 누린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이를 마음껏 이야기할 자유가 있다. 어디든 떠나고 머무를 자유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자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자유', 곧 욕망의 자유다. 먹고 싶으면 마음껏 먹고, 눕고 싶다면 바로 누워야 한다. 그것이 내 욕망이니까. 극단적인 경우, 아무런 제약이 없는 완벽한 자유를 위해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그것이 내 욕망이니까. 정말 이것이 참된 자유인가? 참된 자유라면 선한 결과가 뒤따라야겠지만, 욕망의 자유는 더 강한 욕망을 낳을 뿐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무엇을 진정한 자유라고 하는가? 오늘 말씀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 참된 자유라고 말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인지 함께 살펴보자.
먼저 죄로부터의 해방부터 살펴보자.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핵심은 자기 중심성, 곧 이기심이다. 이기심은 서론에서 말한 욕망의 뿌리다. 아담과 하와를 보자. 하나님이 먹지 말라 했던 선악과를 먹은 후, 하와는 뱀을 탓하고, 아담은 하와를 탓한다. 본인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즉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드러낸다.
11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벌거벗었다고 누가 말해 주었느냐? 내가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12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줘서 먹었습니다." 13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네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냐?"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뱀이 저를 속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열매를 먹었습니다."- 창세기 3:11-12
우리라고 다를까?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손해는 안중에도 없다. 운전 중 끼어들기를 하거나, 뒷사람을 살피지 않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는다.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서도 이기심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기심이 나쁘다고 머리로 이해하지만, 떨쳐내기 어려워하며, 이기적인 제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 속의 아담과 하와이며, 원죄다. 만약 이러한 죄에서 벗어난다면 어떨까? 남에게 선의를 베풀 때, 손해를 저울질하며 계산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의 성공을 보며 내심 부러워하거나 질투하기보다, 진심으로 기뻐할 것이다. 나를 깎아내려 남을 세워줄 수 있고, 남의 행복을 내 행복처럼 여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의 모습이다.
다음으로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알아보자. 인간은 죽음이라는 근원적 한계를 갖고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도 파도 앞 모래성에 불과하다. 나도 죽고, 당신도 죽는다. 모두가 죽는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일에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껴 있다.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 왕은 말년에 이렇게 고백했다. “인생은 정말 허무하고 허무하다. 세상만사가 너무 허무하다! 사람이 해 아래서 일하는 모든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전도서 1:2-3)” 이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이 허무함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영생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영생은 영원한 육신의 삶이 아니다. 천국에서 누리는 영적 영생이다. 정말 이것이 사실이라면, 죽음부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영원이라는 시간의 개념 속에서 현재를 바라보니, 눈앞의 이익과 손해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지는 것에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이 넉넉함은 자연스럽게 타인을 향한 배려와 사랑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나누는 일도 훨씬 쉬워진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음으로부터 자유이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정한 자유임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노력해야 이를 얻을 수 있는가? 너무나 놀랍게도,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가 이미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한다. 과거 완료의 의미가 담긴 ‘해방시켰기’라는 단어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로마서 6장에 그 답이 나온다.
6 우리는,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무력하게 되었으므로, 우리가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7 그것은 죽은 사람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 9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기에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그분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나신 것입니다.- 로마서 6:6-10
예수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죗값을 대신 치러준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죄가 ‘무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온 예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인간의 몸으로 살아났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날 것’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노력 하나 없이 이루어졌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래서 성경은 이 자유를 '은혜', 값없이 받은 선물이라고 한다. 우리의 노력은 필요없다. 이미 주어진 자유를 믿음으로 받아 누리면 그뿐이다.
우리는 예수의 피 값으로 받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마음껏 ‘이웃사랑’하고 있는가? 친구의 성공에 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우리의 손해를 손해로 여기지 않는가? 아직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유를 누릴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한 번에 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꽤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하나씩 해보자. 먼저 직장에서 웃는 표정을 지어보자. 무거운 물건을 드는 동료가 보이면 손을 거들어 주자. 점심 먹은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머쓱한 듯 건네주자. 이렇게 하나씩 해보자. 이렇게 한순간, 한순간 시간을 채우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훌쩍 키워놓으시지 않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값없이 받은 자유를 만끽하여 넉넉함을 누리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한다. 아멘!
· 참고 : <생명의 삶>(두란노)을 기준으로 드리는 가정예배입니다. <생명의 삶>을 함께 사용하시거나, 아래 링크를 같이 이용하시면 더욱 풍성한 나눔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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