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3-4
3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4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삶에는 고통이 가득하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인생은 고통의 시계추와 같다’라고 한다. 석가모니도 마찬가지다. ‘생, 노, 병, 사는 고통이다.’라고 선언한다. 기독교는 다른가? 기독교도 인생은 환난의 연속이라 말한다. 다만 고통을 겪더라도 즐거워할 수 있다고 한다. 환난이 소망을 낳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난을 향한 기독교적 인식인데, 오늘 본문으로 이를 살펴보자.
과학의 발전에 따라, 많은 현대인이 유물론적 관점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모든 일을 눈에 보이는 것, 즉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만 설명하는 관점이다. 유물론에서 고난은 우연이거나 물리적인 현상일 뿐, 의미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고난에 이렇게 접근하면, 삶이 간단해진다. 우리가 왜 힘겨운가? 세상이 원래 그런 거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고난에 의미가 없다면, 고난으로 가득 찬 이 삶을 왜 살아야 하는가?
오늘 말씀은 고난의 의미를 제시한다. 단련된 인품을 통한 소망. 우리는 고난을 겪으며, 혼자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세상 앞에서 초라하게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쭐했던 자아가 고개를 숙인다. 겸손해지고 성숙해진다. 거센 풀무 불에 정련되어 나오는 금을 보라. 겉보기에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 같은 맹렬한 불길이다. 하지만 그 불길은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수한 금을 만든다. 고난도 마찬가지다. 고통이라는 뜨거운 불을 통과하며 우리는 더 강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리고 비로소 세상보다 더 큰 존재에게 눈을 돌리고 의지한다. 그것만이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소망인 하나님이다. 즉 고난은 우리를 단련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는 통로인 것이다.
왜 하나님은 굳이 고난을 통해 단련된 인품과 소망을 주시는가? 쉬운 방법으로 주시면 안 되는가? 만약 이런 의문이 든다면, 자신을 애착 인형처럼 수동적인 피조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 정도 수준으로 여기지 않으신다.
18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보아라,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마태복음 28:18-20, 쉬운성경
15 이제 내가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방금 전에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5:15, 쉬운성경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할 일을 맡기셨다. 그리고 친구라 부르며 신의 계획을 공유하셨다. 다시 말해, 우리를 그저 부모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 아기가 아니라 신의 대리자요, 친구로 생각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이를 인정하길 원하신다. 물론 쉬운 지위가 아니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딴 길로 새어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자극적인 음식을 탐하다 탈이 나기도 한다. 소중한 걸 잃어버리기도 한다. 허무함에 허우적거린다. 그러다 빛을 발견하고 따르기를 선택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그 결과인 고난을 허락하신다. 마음껏 방황하도록 하신다. 그렇다. 이제, 왜 굳이 고난이어야 하는지 답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이자 친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닥치면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온 건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니님은 그런 우리에게 인내를 강조하신다.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도 참으라는 말씀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부모님의 잔소리에 불만을 표출할 때가 많았다. 별다른 설명 없이 무작정 당신의 말을 따르라는 요구는 부당해 보였다. 과연 성인이 된 지금도 똑같이 생각하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거다. 당시에 우리가 부모님 뜻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부족했음을 깨달을 뿐이다. 부모와 자녀의 격차도 이러한데, 우리와 하나님의 격차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잊지 말자.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이자 친구임을. 이 수준으로 이끄시는 그의 일하심을.
9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내가 명령한 것을 기억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가는 곳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여호수아1:9, 쉬운성경
끝나지 않을 터널 같은 고통을 겪는 당신. 이번 한 주를 참아보자. 하나님이 이렇게 응원하신다. ‘네가 느낄 수 없어도 어디든 너와 함께한다. 나는 네 여호와 하나님이다.’ 인내하며 소망에 닿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한다. 아멘!
· 참고 : <생명의 삶>(두란노)을 기준으로 드리는 가정예배입니다. <생명의 삶>을 함께 사용하시거나, 아래 링크를 같이 이용하시면 더욱 풍성한 나눔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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