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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합사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12

by 김이집사

두근두근..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나는 연차까지 써가며 그날을 준비했다.


고양이 합사에 대해 정말 많은 글을 읽어보고 영상을 찾아봤다.

혼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1만 번은 돌려본 것 같다.


둘째를 격리시킬 방을 정리하고 방묘문을 만들고..

새로 온 아이를 위한 숨숨집과 스크래쳐, 장난감도 마련해 놨다.


로또는 왜 엄마가 분주했는지 알지 못한 채로 혼자 신나서 따라다녔다.


당시 우리 집은 3층이었고, 아파트 정문이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아파트 입구로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곧이어 벨이 울렸다.


모자를 쓴 씩씩한 목소리에 밝은 여자분이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들고 있던 핑크색 이동장에서는 끊임없이 삑삑 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했다.

고양이 울음소리라니..


지금 손에 들어오신 게 새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로또는 전혀 울지 않았기 때문에 고양이가 저렇게 계속 우는 게 너무 생소했다.

물론 고양이 울음소리를 처음 들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삑삑거리는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솔직히 그날의 대화는 기억에 잘 없다.

왜인지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고, 모든 신경이 이동장 안에 조그마한 녀석에게 가있었다.




추정나이 태어난 지 6 주령..


로또는 생후 4개월이 다 되어 갈 무렵에 내게 왔는데, 그때 몸무게가 800그램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6 주령이라는 이 꼬맹이는 무려 500그램이나 됐다.


800그램과 600그램..


천지차이였다.

흔한 말로 깃털처럼 가볍다는 말..

그게 뭔지 그날 알았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작디작은 그 연약함..

이렇게 작고 어린 아기고양이는 난생처음 봤다.


태풍이 지나가던 어느 여름날 밤


뒷마당에서 빽빽거리는 소리가 나서 가보았더니 녀석이 혼자 비에 쫄딱 젖어 울고 있었다고 한다.

어미가 있을 거란 생각에 기다렸지만 계속 내리는 빗속에 녀석을 그냥 둘 수 없어 결국엔 구조를 하셨다고 했다.

아마도 태풍에 어미 고양이가 안전한 곳으로 새끼들을 이소시키다 한 마리를 놓친 것 같았다.


요 조그마한 게 자기도 고양이라고 어찌나 바둥바둥거리며 제 목소리를 내는지..

마치 고양이라기보다는 병아리 같았다.


작게 이빨이 나고 있어 미지근한 물에 살짝 불린 사료를 줘도 된다고 하셨다.

물에 불린 사료라니..

너무 귀여웠다..


구조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안방에 있던 로또가 튀어나왔다.

분명히 문을 닫아놨었는데, 안방 베란다 쪽의 창이 조금 열려있었던 갓 같다.

의도치 않게 로또는 그렇게 뽀송이와 대면을 해버렸다.


바로 떼어놓기는 했지만 너무 놀랬다.

최소 2주는 분리해야 한다고 했는데..

로또가 너무 놀라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의외로 하악질 한 번 없고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볼 뿐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로또로만 꽉 차버렸다.


입양계약서를 쓰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집 환경을 보시고 잘 키워달라는 당부를 하시고 돌아가셨다.


조용해진 거실에는 뽀송이와 나..

이렇게 둘만 남았다.


그제야 아이가 똑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올려보았다.


로또랑 생김새부터 완전히 다른 작은 하얀 고양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끝없이 바둥바둥거리는 녀석의 에너지..

새파란 눈동자에 새하얀 털..


외관은 깨끗해 보였는데 아직 그루밍을 못하는지 지린내가 났다.

분명히 온몸이 새하얀 털인 것 같은데 입 주변과 발은 노릿하고 꼬질꼬질했다.

사진보다 훨씬 억울해 보이는 얼굴..

피식 웃음이 났다.


조막만 한 머리와 조그마한 몸통..

그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긴 다리..

다리가 몸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또의 짧은 다리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뭔가 균형이 안 맞아 보였다.

귀엽다기보다는..

너무 긴 다리가 낯설고 약간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뭔가 이상해보였다.

그리고 엄청나게 빨랐다.

네트망도 기어오르고 커튼도 타고 올랐다.

내 옷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로또와는 달랐다.

너무너무 달랐다.

뭔가 어색했다.


그리고 아까전에 로또와 뜻하지 않게 대면한 것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작고 연약한 녀석이 귀여운 것 같긴한데..

내 눈에 예쁜지 안 예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둘째가 우리 집에 왔는데..

역시나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로또에 대한 걱정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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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800그램 로또(왼쪽), 6주 500그램 라떼(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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