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15
나의 작은 아기 고양이 로또..
항상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예쁜 짓만 하던 귀염둥이..
싫은 게 있으면 약간의 버둥거림.. 작은 몸짓으로 표현하는 게 전부였고 그 행동마저 너무 귀여운 나의 작은 아기 고양이..
그 로또가 하. 악. 질. 을 했다..
충격이었다.
귀를 있는 힘껏 뒤로 젖히고 수염을 세우며 보여주던 그 날카로운 눈빛과 표정, 그리고 처음 듣는 고양이의 하악질 소리..
고양이를 반려하는 사람 중에 고양이의 하악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흔하디 흔한 여러 제스처 중 하나지만, 처음으로 하악질을 본 그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라떼한테 잔뜩 화가 났다.
얘는 대체 어떻게 방묘문을 넘은 거지..
그렇게 의도치 않게 합사가 급하게 진행되어 버렸다.
당시의 라떼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그냥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내 눈에 라떼는 접신을 했거나 정말 미친 상태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눈앞에 뭔가 움직이는 게 보이면 놀자며 그대로 달려들었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밥을 먹고, 그러다 혼자 채터링을 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그대로 그 자리에 픽 쓰러져 잠을 자버리곤 했다.
6주 된 아깽이는 통제불능이었다.
라떼는 눈앞에 있는 로또가 너무 좋았나 보다.
라떼는 계속 로또만 따라다녔다.
로또가 밥을 먹으면 같이 먹자며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어 빼앗아 먹고, 로또가 물을 마시면 따라가서 물을 뺏어 마셨다.
로또가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에 따라 들어가서 모래놀이를 하고, 로또가 잠시 쿠션 위에서 쉬려고 하면 기어코 따라가서 머리를 들이밀며 비집고 들어갔다.
보통 어린 고양이는 자기보다 큰 고양이를 보고 따라 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고양이의 사회화는 보통 12주 안에 이루어지는데, 라떼는 6 주령 즈음에 구조되었기 때문에 보고 배울 수 있는 대상이 로또가 전부였을 것이다.
그래서 집요하게 로또를 따라다니고 배우려는 것은 본능이었을 텐데.. 당시의 나는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로또는 라떼의 엄마가 아니었고, 내 눈에는 라떼가 로또를 괴롭히는 것으로만 보였다.
로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라떼를 계속 피해 다녔다.
내 마음 같아서는 첫째답게 확 제압해 버리기를 응원했지만, 라떼가 쫓아오지 못할 높은 곳으로 재빠르게 도망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떼는 계속 로또를 따라다녔고, 로또는 계속 하악질을 했다.
자기 물건을 라떼가 마구잡이로 사용하는데도 로또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고양이가 잔뜩 화가 나면 침을 뱉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로또가 하악질로 끝나지 않을 때면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거칠게 침을 뱉는 모습까지 보게 되었고, 천사 같은 나의 아기 고양이는 이제 없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 슬퍼졌다.
어느덧 로또의 눈에 나는 아예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로또는 오직 라떼만 주시했다.
나는 끊임없이 로또에게 미안했다..
라떼는 로또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데려온 라떼가 미웠다.
남편에게 라떼가 로또만 괴롭힌다고..
로또가 라떼 때문에 스트레스받아한다고 어떡하냐고, 라떼가 미워죽겠다고 하며 펑펑 울었다.
남편이 내게 물었다.
라떼가 그렇게까지 미우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나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고선 자기는 로또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라떼가 안 밉냐고 따져 물었다.
남편은 내게 다시 말했다.
자신은 로또와 라떼가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사랑한다고..
화가 났다.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사랑한다니?
라떼를 데려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또 따져 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라떼는 우리가 원해서 데려온 건지 자기가 원해서 우리 집에 온 게 아니라고..
그러니 자신은 로또와 라떼가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사랑한다고..
그 말을 들으며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속으로는 계속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첫째인 로또와 만난지 일주일밖에 안 된 라떼가 어떻게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사랑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옳은 말만 하는 남편까지도 미워지려고 했다..
나는 내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회사에서도 관리직을 맡고 있어 하루에도 여러 선택을 하며, 정확한 판단을 위한 고민도 많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내린 결정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직원들에게도 옳은 말만 하려 하고, 나 자신도 일에 대한 신념이 명확한 편이다.
그런데 로또와 관련된 일에는 이렇게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다니..
스스로 제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난 후..
로또는 더 이상 하악질을 하지 않았다.
라떼가 갑자기 나타나거나 뛰어오르면 여전히 깜짝 놀라기는 하였지만,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 다니지 않고 라떼의 행동을 옆에서 물끄러미 관찰하며 쳐다보았다.
라떼가 너무 어려 캣타워나 소파에 오르지 못할 때라 높은 곳에서 여유 있게 라떼의 행동을 관찰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가끔이지만 같이 우다다를 하며 술래잡기하며 놀아주기도 했다.
둘이 투닥거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싸움이 아니라 같이 노는 모습이었다.
조금은 익숙해졌나.. 안심이 되었다.
아직 둘 다 어리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으며 내 마음에도 안정이 조금씩 찾아왔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로또가 갑자기 설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