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16
라떼가 오고..
드디어 둘이 좀 친해졌나 싶어 안도하고 있던 찰나 로또가 갑자기 설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변이 조금 무른가? 싶었는데 갑자기 완전 물 설사가 시작되었다.
그 깔끔쟁이가 엉덩이 처리가 완벽하게 되지 않으니 불편하고 불안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엉덩이를 닦아주자 엄청 짜증 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배가 아픈 건지 움직임도 줄어들고 먹는 것도 줄어들었다.
설사라니..
처음 있는 일이다.
바로 병원으로 전화하여 상황을 이야기하니 분변검사가 필요할 것 같으니 채변을 해오라고 했다.
우리는 당장 로또를 들쳐 매고 병원으로 향했다.
원충..이라고 했다.
원충?
원충이 뭐지? 벌레라는 건가? 무슨???
잠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원충은 내부 기생충의 일종이란다.
오.. 마이.. 갓....
로또는 평소 구충을 철저히 하고 있었고, 라떼도 분명히 구충을 포함한 기본 검사를 다 하고 데려왔다.
그런데 원충이라니?
그리고 정작 라떼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설사는 로또만 하고 있는데??
둘 다 감염이 되었을 거라는데 왜 또 로또만 아픈 건지..
겨우 안정을 찾아가던 내 감정이 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라떼의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집안에서만 키우는 아이에게 원충이 생기는 일은 거의 드물다고 했다.
하지만 라떼는 길에서 데려온 아이였고, 구충을 해줬더라도 최소 2주간 격리 후 합사를 하는 게 맞는데 라떼의 탈출로 인해 일주일 만에 강제 합사가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원충을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지금 라떼가 멀쩡해 보이는 걸로 보면, 라떼는 구충이 잡혀가고 있는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그 사이 둘이 같이 화장실, 물그릇, 밥그릇을 공유하였으면 반드시 옮았을 것이고 지금이라도 격리를 하지 않으면 서로 옮기고 옮기는 것을 계속 반복할 것이라는 거다..
겨우 로또의 구토와 하악질이 잦아들었는데..
이제는 원충이라니..
어찌해야 하는지 물어봤더니 일단 무조건 따로 격리하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모든 물품을 소독하고 다시 세팅해 주라고 했다.
로또는 약도 일주일치나 받아왔다.
캡슐약은 먹여본 적도 없는데 꼭 먹여야 한다고 하니 막막하였다.
약 먹이는 동영상을 1000번쯤 돌려보고 겨우 시도해서 먹일 수 있었다.
격리라니..
이게 겨우 둘 이 좀 친해진 것 같은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아 막막해졌다.
분명 구충도 다 했는데..
검사도 다 하고 데려왔는데..
녀석들을 격리해 놓고, 용품을 락스로 박박 문지르면서 뭔가 내 속에서 끊임없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다시 멘붕이었다.
나의 곱지 않은 시선이 라떼에게 가서 꽂혔다.
나도 알고 있다.
라떼는 아무 잘못 없다는 것을..
라떼가 방묘문을 넘은 것도 내가 완벽하게 세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떼가 원충을 보유하고 있었더라도 내가 완벽하게 격리한 후 합사를 진행했다면 로또에게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계획대로 합사를 했다면 로또는 문제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다 알고 있는 그 사실을 당시의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라떼는 너무 건강하고 멀쩡한데 로또만 아프게 되니 라떼가 미워 보였다.
아직 두 달도 안된 그 작디작은 아깽이가 예뻐 보이지 않던 그 시절의 나..
당시의 라떼에게는 아직도 미안하다..
다시 아이들을 격리하자 격리방에 갇힌 라떼는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아이의 세상은 거실까지 확장되어 버렸는데 갑자기 작은 방에 다시 갇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갑갑했을까...
하지만 나는 라떼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라떼, 너 때문에 로또가 아파서 격리하는 거니까 너는 갇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동화 속에 나오는 그 어떤 계모보다도 더 못됐었다.
그때의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