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21
아기 고양이..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자그마한 몸뚱아리..
얼굴이 비좁게 느껴지는 커다란 눈망울..
한 손에 바스러질 것 같은 연약함..
따스한 햇살 아래, 동그란 쿠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기 고양이는 상상만으로도 무해함, 그 자체다..
하지만..
아기 고양이를 실제로 겪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기 고양이의 에너지..
엄. 청. 나. 다..
로또 하나만 키울 때는 몰랐다.
한 달 반을 유리벽안에 갇혀 있던 녀석..
그 작은 유리벽을 벗어났던 녀석은 모든 것을 어색해했었다..
방석이나 이불에 앉지도 못했었고, 새로 사준 숨숨집도 무서우서 못 들어갔었다.
녀석의 짧은 다리로는 새로 사준 캣타워에도 오르지 못했었고 소파 위, 식탁 의자 위..
그 어떤 곳도 마음대로 오르지 못했었다.
손만 내밀어도 놀라서 도망갔었던 그 시절..
시간이 지나서 쓰담받는 것은 좋아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눈앞으로 갑자기 다가오는 손에는 경계하고 한다.
나는 아기 고양이는 모두 로또 같을 줄 알았다.
얌전한 작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
하지만, 라떼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이 자식, 찐이다...
생후 6주 추정..
녀석은 잠을 잘 때 외에는 종일 삐약거리면서 울어댔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 건지, 병아리를 키우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종일 쉬지 않고 삐약삐약 거린다.
울면서 나를 따라다니고 울면서 로또를 따라다녔다.
녀석이 조용해질라치면 덜컥 불안해서 찾아보게 될 정도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잘 때를 제외하고는 정말 단 1초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아기 고양이는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이 전혀 불가능했다.
공놀이를 하다가도 갑자기 집사의 발을 공격한다. 그런다 갑자기 쥐돌이 장난감을 물고 뛰어다니고 그러다 베란다고 뛰쳐나간다.
조용해서 가보면 그 자리에 쓰러져서 자고 있다.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 녀석의 동선과 에너지..
저건 분명히 접신을 했거나 빙의가 된 건다..
아니면 절대 저렇게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했다.
그 에너지와 움직임에 로또와 나는 멍하니 녀석을 구경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넘치는 녀석의 호기심..
로또는 어릴 때부터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편이었다.
집사가 소파에 올려주면 소파에서 장난감을 툭툭거리며 그릉거리다 잠이 들었다.
침대에 올려주면 침대에서 뒹굴다 잠들었다.
주변 물건에도 크게 흥미가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자기 물건만 갖고 놀았다.
전선을 물어뜯는 일도, 구석에 들어가서 숨는 일도, 집사의 물건을 떨어뜨리는 일도.. 걱정했던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음식도 자기 거 외엔 아무거나 입에 넣지도 않았다.
완벽한 고양이였다.
하지만 라떼는 달랐다.
라떼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엔 화분을 키우는 취미가 있었기 때문에 집 곳곳에 다양한 토분과 식물이 많았다.
로또는 식물을 톡톡 건드려보며 놀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 크게 흥미는 없었다.
오히려 식물과 같이 햇살을 맞으며 낮잠을 잤다.
그러나 라떼는 달랐다.
화분의 이파리를 건드려보고 잎사귀가 흔들거리면 흥분을 하더니 다 뜯어버렸다.
급기야는 화분에 기어올라갔고 결국엔 화분 안으로까지 기어들어가서 흙을 파냈다.
결국 화분을 엎어뜨리고 놀라서 도망가는 걸로 끝이 났다.
라떼 덕분에 내 취미생활은 끝이 났다.
화분은 모두 주변에 나눠주거나 당근에 내놨다.
한 개도 남기지 못하고 전부 정리해야만 했다.
그 외에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두루마리 휴지는 다 풀어헤치며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싱크대에 올라가 손에 닿는 키친타월도 다 풀어서 찢어버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비닐봉지는 구멍을 내버렸고 종이봉투 손잡이에 머리가 낀 채로 놀라 소리를 지르며 온 집을 뛰어다닌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장난감 끈을 통째로 뜯어먹어버려 병원으로 들쳐 매고 뛰어간 적도 있었다.
라떼의 에너지는 밤에도 계속되었다.
처음엔 한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로또는 어릴 때부터 정해진 공간에서 잤다.
안방 침대 밑 쿠션에서 잠을 잤고, 집사가 늦잠을 잘 때는 가끔 깨우러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라떼는 달랐다.
새벽 4시..
어디서 그릉그릉 소리가 난다.
그것도 내 귀에 바짝 대고 말이다.
깨서 아는 척을 하면 매일 같은 시간에 깨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안 들리는척하며 계속 자는 척했다.
사각사각..
내 한쪽 볼이 따갑기 시작한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머리맡에서 그릉거리면서 내 볼을 핥는다.
고양이의 혀는 강아지와 다르다.
고양이의 혀는 엄청나게 까끌까끌하다. 그 까끌까끌한 혀로 뼈에 고기를 발라내어 먹고 그루밍을 하는 데 사용한다.
그 엄청난 기능의 혓바닥..
이건 당해봐야 한다.
흡사 누가 사포로 내 얼굴을 미는 기분이다 ㅠ
참다가 너무 아파서 얼굴을 돌렸더니 이번엔 이불 안쪽으로 들어와서 겨드랑이 쪽으로 파고 들어온다. 그리곤 팔뚝 안쪽의 가장 여린 부분을 핥기 시작한다.
고양이가 사람의 몸에 오르는 건 신뢰와 애정표현이라고 했던가..
고맙고 귀엽기도 하지만 너무 아팠다.
그래서 잠결에 녀석을 내 배 위에 올려놓고 토닥여주며 재우려 하면 이번에 집요하게 손바닥에 계속 번팅을 하며 쓰다듬으라고 난리다.
그렇게 한동안 새벽 4시에 강제 기상을 했다.
그럼 분리 수면을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이미 이 집은 모두 라떼의 영역이 되었다.
이 집만이 오직 녀석의 세상 전부인데 차마 방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을 닫아놓으면 밤새 문을 긁고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잠깐 화장실에 가는 것도 문 열라고 난리인데 밤새 침실을 닫아놓는 건 불가능하다.
아기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로또같이 얌전한 녀석도 있지만 보통은 라떼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기 고양이는 이런 존재다..
제발 귀엽다고 무작정 키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