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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애착인형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20

by 김이집사

라떼의 애착인형



라떼가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라떼를 위한 숨숨집, 장난감, 스크래처 등을 새로 구입했었다.

이미 고양이 용품은 차고 넘쳤지만 새것을 주고 싶었다.


그중 라떼가 가장 좋아하던 공이 있었다.

털실로 만들어진 동글동글하고 폭신폭신한 공..

파스텔톤의 그 포근포근한 공은 하얀 털에 파란 눈을 가진 녀석과 찰떡궁합이었다.


라떼는 그 공을 너무 좋아했다.

종일 곁에 두었고, 잠을 잘 때도 껴안고 잠들었다.

완벽한 녀석의 애착인형이었다.


그 보드랍고 폭신한 공에는 긴 털끈이 달려있었다.

길이도 꽤 길어서 거의 1미터는 되었던 것 같다.

이 끈을 흔들어주면 거의 미쳐서 뛰어다니곤 했었다.

끈을 물고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도 했고 몸에 감고 뒹굴기도 했다.

그래서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이 공과 함께 찍힌 사진이 정말 많다.


그러던 어느 날..

흩어져 있던 장난감을 정리하던 중 내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라떼가 좋아하던 공..

그 공에 달려있던 긴 털끈이 통째로 사. 라. 졌. 다...


오싹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온 집을 기어 다니며 뒤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저 끈이 없었던 거지??

오늘?

어제?

그저께?

아침에는 끈이 달려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 끈이 왜 떨어져 나간 걸까?


누군가 먹은 건가.....?


일단 로또는 아니다.

로또는 조금만 의심쩍어도 절대 입에 넣지 않는다.

애초에 사료가 아니면 입을 갖다 대지도 않는다.


먹었다면 분명히 라떼다..

호기심 많고 일단 맛부터 보는 라떼..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고양이 이물 섭취

고양이가 끈을 먹었을 때

고양이 선형 이물

고양이, 털실


온통 위험하다는 내용만 있었다.

고양이의 혀에는 돌기가 있는데, 그 형태 때문에 끈 종류가 입으로 들어가면 뱉을 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 그대로 삼키게 된다고 한다.


위에서 소화가 안 되어 장으로 넘어갔을 때는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는 개복수술까지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라떼를 안고 그대로 병원으로 뛰어갔다.


병원에서도 난감해하였다.

라떼가 먹었다고 한들 그 시점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았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먹은 시점을 알면 구토 유도제를 먹이거나 내시경이라도 할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섣불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식욕도 있고 별 탈 없이 잘 놀고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혹시나 소화가 되어 변으로 나올 수 있으니 2~3일간 잘 지켜보라고 하셨다.

식욕이 없어지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증세가 보이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역시나 잘못되면 개복수술까지 각옥해야한다고 했다.


집으로 와서 다시 미친 듯이 끈을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밥을 먹고 그루밍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마음을 착잡해졌다.


왜 그런 공을 만든 건지..

장난감 업체가 원망스러웠다.

그걸 먹은 라떼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역시 다 내 잘못이다.


그 끈을 끊어서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다.

내 부주의로 수술까지 해야 한다면..

못 견딜 것 같았다.

무서웠다.

그날 난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계속 속으로 빌었다.


제발 똥으로 나와라..

제발 똥으로 나와라..

제발 똥으로 나와라..

제발 똥으로 나와라...

제발..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녀석들 화장실로 달려갔다.

비닐장갑을 끼고 화장실을 헤집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종일 라떼만 지켜봤다.

라떼가 물 마시고 밥 먹는 것을 계속 지켜보았다.

혹시나 이상증세가 보일까..

그것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잘 먹고 잘 놀았다


다음날 새벽...

역시나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다시 화장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비닐장갑을 끼고선 혹여나 놓칠세라 아이들의 변을 샅샅이 분해했다.


아..

뭔가 딱딱한 게 잡혔다.

손으로 눌러 헤집어보자 파스텔톤의 털실 뭉치가 보였다.


심봤다!!!!

나는 양손에 똥덩어리를 들고서 팔짝팔짝 뛰었다.


털실뭉치가 계속 나왔다.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끊어서 먹었는지 새끼손가락 크기의 털실조각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거의 1미터는 족히 보이던 그 많은 양을 다 먹어치운 것 같았다.

옆에서 어리둥절한 라떼를 부둥켜안았다.

완벽한 똥을 싸놓은 라떼에게 폭풍 칭찬을 퍼부었다.


며칠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모두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엔 그 무엇도 바닥이나 테이블 위에 굴러다니지 않는다.

장난감을 사용 후 반드시 정리한다.

특히, 끈 소재의 장난감을 놀아줄 때도 조심하며 놀아준다.

털실소재로 된 것은 아예 집에 들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것은 무조건 치운다.

청소는 무조건 매일 한다.

퇴근 후에라도 한다.

몸살이 걸려도 한다.

무조건 한다.


이 일을 겪은 후 내 의도와 상관없이 미니멀 라이프를 즐기게 되었다. (물론 집사 물건만이다)


김라떼, 정말 정말 고맙다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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