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23
2021년 2월..
로또가 한 살 되던 해
우리는 이사했다.
신축아파트.. 설레었다.
결혼 준비 중 청약이 당첨되었는데,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갈 예정이었기에 둘째 라떼도 선뜻 데려올 수 있었다.
우리의 첫 번째 집..
10평대의 작은 아파트였다.
신혼부부 둘만 살기엔 덧없이 좋았으나 로또라떼와 함께 살기엔 조금 버거웠다.
일단, 녀석들의 가구가 자리를 크게 차지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다묘집안은 고양이 용품이 풍부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해서 이것저것 계속 사들였다.
캣타워 2개, 고양이 화장실 2개, 숨숨집 여러 개, 고양이 터널 2개, 고양이 스크래쳐 여러 개, 고양이 장난감 여러 개...
녀석들이 우다다할 때 우리는 피해있어야했다.
집이 좁아 녀석들이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짧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난 계속 고양이 용품을 사들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부부가 있을 공간도 부족해졌다.
다행히 이사 갈 집은 좀 더 넓었다.
우리는 새로운 집에 로또라떼의 공간을 더 만들어주기로 작정했다.
새집이니까 다 새 걸로 꾸며줘야지!!
캣타워도 새로 들이기로 했고, 캣휠, 각종 고양이 용품..
모두 새로 사주고 싶었다.
이사 가기 한 달 전부터 대형 캣타워도 예약주문 해놓았고 고양이 용품도 종류별로 다 골라 새로 이사 갈 집에 택배로 보내놨다.
하지만..
그건 다 내 욕심이었다.
영역동물
이걸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이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준비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실제로 고양이와 함께 이사한 후기들을 찾아보니 고양이가 이사한 후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한 달 내내 숨어 지냈다느니, 갑자기 예민해져서 집사를 공격했다느니, 사이좋게 지내던 녀석들이 갑자기 앙숙이 되어버려 합사를 다시 시작했다느니, 갑자기 식음 전폐를 해서 입원을 시켰다느니.. 등등 무서운 얘기만 가득했다.
이사가 쉬웠다는 글은 없었다.
큰일이다..
가뜩이나 익숙하지 않은 공간..
새 공간에 새 물건들..
이런 것들이 소중한 내 고양이를 패닉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고 한다.
녀석들의 냄새가 잔뜩 묻어있는 물건들이 필요했다.
낡은 숨숨집, 낡은 스크래쳐, 낡은 방석..
이사하면서 다 갖다 버리고 싶었던 것들 말이다.
그래서 우린 녀석들의 보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도 갖고 놀아서 구멍이 난 박스, 보풀 가득한 숨숨집, 좋아하던 비닐봉지, 다 찢어진 종이봉투, 오래 써서 너덜거리는 스크래쳐..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이사하다 아이들을 잃어버렸다는 글도 봐버렸다.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역할분담을 하기로 했다.
이사하기 전날 밤
우리는 이사할 집에 녀석들의 보물(?)들을 가지고 미리 갔다.
남집사 방으로 쓰기로 했던 맨 안쪽방..
그곳에 보물들을 미리 세팅해 두었다.
화장실, 숨숨집, 스크래쳐, 물그릇, 밥그릇, 장난감..
이사 당일
해도 뜨지 않은 새카만 새벽..
나는 로또라떼를 데리고 이사할 집으로 먼저 이동했다.
녀석들이 있을 방문 앞에 "고양이가 있으니 절대로 문 열지 마세요"라고 쓴 경고문을 10장이나 붙였다.
그리고 이삿짐이 들어오기 전에 공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같이 시간을 보냈다.
녀석들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넓어진 빈 공간에 우리끼리만 있으니 나름 밥도 먹고 간식도 먹으며 적응해가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사는..
남집사 혼자 업체랑 정리하고 넘어왔다. ㅎㅎ
이삿짐이 들어오면서부터 녀석들을 잔뜩 긴장했다.
모르는 사람들의 소리, 처음 들어본 각종 소음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큰 소리들..
이사하는 내내 녀석들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숨숨집에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이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떠났고 집안은 고요해졌다.
녀석들이 있던 방도 조용했다.
어떡하지..
걱정되는 마음에 방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세상에..
라떼가 갑자기 방에서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온 집안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갑자기 넓어진 공간 때문일까?
너무 신나 보였다.
그렇게 1초 만에 적응완료해 버린 녀석!
그러나 로또는 나오지 못했다.
억지로 꺼내면 스트레스받을까 봐 그냥 두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집 정리도 마무리되어 갔다.
그런데도 녀석은 아직 나오지 못했다.
이 먹보 녀석이 사료 한 톨 먹지 않고 간식도 마다한 채로 이동장 안에 계속 틀어박혀 있었다.
참다못한 남집사가 슬며시 방에 들어가서 살살 달래 가며 안고 나왔다.
그렇게 거실 한가운데 살짝 내려놓자 스위치가 켜진 듯이 갑자기 미친 듯이 우다다를 시작했다.
라떼도 덩달아 같이 뛰기 시작했다.
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개구호흡을 할 지경까지 미친 듯이 뛰어다니더니 갑자기 적응 완료해 버렸다.
화장실에 먼저 가더니 밥도 먹기 시작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니, 이럴 거면 대체 왜 무서운 척을 한 거야 ㅎㅎ
형제는 용감했다고 했던가..
역시 둘이 함께 있으니 용기가 생겼나 보다.
다행히 로또라떼는 이사 스트레스가 적었다.
고양이도 삶의 공간이 넓어지니 쾌적하긴 한가 보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