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과 할아버지

버티는 기술_최선

by 안나

직소민원팀장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자신의 땅이 사실상 맹지가 되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도면을 펼쳐보고 현장을 다녀왔다.

법적으로는 완전한 맹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차로 십여 분을 빙 돌아가야 닿는 길은

노후자금으로 생각해둔 땅의 가치를

거의 반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행정소송과 주위토지통행권을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내 나이가 여든여섯인데, 그걸 언제 다 하고 앉아 있소.”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준비한 법률 설명은 힘을 잃었다.


행정은 절차를 말하지만,

시민은 시간을 산다.


나는 개발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서로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했다.


“인허가 조건과 진입로 확보 문제는 다시 검토해보겠습니다.”


압박이라기보다는,

‘이 문제를 그냥 넘기지는 않겠다’는 신호였다.


며칠 뒤 협상이 재개되었고,

결국 할아버지는 적정한 가격에 땅을 매도할 수 있었다.


돌아가던 뒷모습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1년쯤 지났을까.

그 할아버지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표정이 밝았다.


“짜장면 한 그릇 사주고 싶어.”


공무원은 시민에게 밥을 얻어먹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계산하겠다고 했다.


짜장면 값 정도는 팀장 체면에 가능하다.


중국집에서 마주 앉았다.

면을 비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조용히 봉투 하나를 밀어왔다.


“커피값이네.”


커피값 치고는 묵직했다.


봉투 안에는 3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봉투를 밀어냈다.


“이건 안 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잠깐, 아주 잠깐,

‘커피가 참 비싸네…’라는 생각이 스쳤다.


견물생심은

사자성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정 그러시면 저랑 같이 시청으로 가시죠. 기부로 처리하겠습니다.”


결국 그 돈은 시에 기부되었다.

자녀분들께 연락을 드렸더니

연말정산 공제도 필요 없다며 웃으셨다.


그날 나는 다시 다짐했다.


청렴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짜장면 앞에서의 선택이라는 것을.


공직자의 보람은

봉투가 아니라

돌아가는 사람의 표정에서 온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그날의 짜장면 맛을 기억한다.


괜히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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