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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Dec 26. 2023

버스를 타고 바다로

3일간의 길고도 짧은 연휴가 끝났다. 오늘은 지난주에 비하면 봄 날씨가 따로 없다. 이런 날은 무조건 바다로 떠나야지.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바다까지 30~40분 정도 걸린다. 사실 이동 시간에 왕복 1시간을 넘게 쓴다는 게 아깝기도 하지만, 이렇게 미루다 보면 영영 바다 구경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냥 간다.


버스 안에서 유튜브로 단편 소설 쓰기 강좌를 듣는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어딘가 나오는 거라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버스를 타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바깥 구경을 한다는 것에 심취한다.


중간에 와글와글 무리지은 여학생들이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딱 봐도 연말 여행을 온 관광객이다. 그들에게는 이 바다가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할까. 아마도 바다를 마주하면 꺅꺅 소리를 지르겠지. 나는 언제든 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미루고 또 미루다 이제야 왔는데. 이제라도 바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뚜벅이도 쉽게 바다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집이 있다니 얼마나 좋아.



바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미리 점찍어 둔 카페로 향했다. 봄 날씨이긴 한데 조금 추운 봄 날씨다. 따뜻한 카페 안에서 보는 바다도 예쁘겠지. (그래, 역시 예쁘다 예뻐!)



파니니 하나에 13600원이라니. 그래도 커피는 4800원으로 조금 저렴(?)한 편이다. 바다 앞이라 조금 비싼 것도 있지만, 요즘 샌드위치 하나에 만원에 육박하는 것을 보면 외식 비용으로 적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뭐 어쨌든 3일간의 연휴 동안 피자 한판 시켜 먹은 게 전부니까. 오늘은 나를 위해 이 정도 쓰는 것에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같이 한 끼에 2만 원씩 내고 먹는다면 사치겠지만, 가끔 하루는 괜찮잖아. (그러보니 요즘 자꾸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라며 합리화를 하고 있는 듯)



요 근래 부쩍 바깥으로 나오면 글이 잘 써지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잘 써진다는 건 완성도 높은 글이 아니라, 그냥 할 말이 줄줄 생각난다는 것 정도) 바닷가 앞이라서 더 잘 써지는 거라며 최면을 걸어본다. 어쩌면 그냥 밖으로 나올 구실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순이 생활 N연차에 드디어 집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나 보다. 아이 등하교를 도와주는 것 정도로는 더 이상 외출로 느껴지지 않는다. 매일 어디든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또 지쳐서 집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 시기가 오겠지. 그러면 그것은 그것대로 받아들여야겠다.


카페에는 겨울왕국의 OST인 렛잇고가 울려 퍼지고, 해변에는 강아지와 뛰어노는 사람들이 보인다. 세상에,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어딨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쓸데없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역시 나 한 명 바닷가에 나온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기분 전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지금 나 너무 상쾌하고 좋아.


브런치에 글을 다 쓰고 나면 소설도 조금 써봐야겠다. 어제저녁에는 소설을 쓰다가 절망에 빠질 뻔했다. 한 줄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어쩌면 나는 소질이 없는 건지도 몰라. 생각해 뒀던 소재를 접고 다른 이야기로 바꿔야 하나? 온갖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계속 써야 한다. 남는 게 시간이잖아, 못할 것도 없지.



좀 전까지만 해도 3층에 혼자 전세를 내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많아졌다. 조금 웅성웅성하지만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내가 너무 좋다. 11시 48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12시 28분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 집에 도착하면 1시가 조금 넘을 거다. 그러면 건조기 안에 웅크리고 있는 빨래를 정리하고, 정전기 청소포로 거실 바닥을 한 번 닦고, 아이 간식을 준비해 두고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가야지.


아, 뭐야. 나 지금 또 계획 세우고 있었네. 그래, 계획을 세우든 즉흥적으로 하든 다 좋다. 난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으니까.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즐겨야지.


오늘 하루는 내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한다. 힘들다 생각하면 힘든 하루가 될 것이고, 행복하다 즐겁다 생각하면 정말로 그런 하루를 보내게 된단다. 오늘의 기억으로 매일 아침 최면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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