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을 쓰라고 독촉 알람이 울린다. 따뜻한 차 한 잔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종종 글을 쓰면서 느낀 거지만, 그때 생각난 것을 바로 옮겨 적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것을 넘어서 나중에는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메모를 해놓고 나중에 쓰려고 해도 그때 그 감정이 실감 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방학 숙제로 밀린 일기를 몰아 쓰는 것처럼.
악상(?)이 떠오르면, 그때가 언제 어디가 됐든 일단 자리 펴고 써야 하는 거구나.
신랑은 언제까지 일기를 쓸 거냐고 묻는다. 나도 안다. 내가 쓰는 글은 공개된 일기와 다름없다. 불특정 다수가 내 일상을 들여다본다. 그마저도 지인을 제외하면 글 내용을 눈에 넣기 전에 하트와 라이킷만 대충 누르고 가는 나그네들 뿐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내 이야기를 해보라고 한다. 응, 근데 나는 정말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사람이라 이런 것밖에 쓸 말이 없어. 어쩌면 평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게 글 쓰는 사람의 능력이겠지. 그런데 난 아직 아닌 것 같다. '아직'이라는 말을 덧붙인 건, 혹시나 하는 희망 때문이다. 헛된 희망이라도 절망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제 시작해 놓고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번 달에는 소설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몇 줄을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소설책을 그렇게 읽었는데도 막상 내 이야기를 쓰려니 한 줄이 그렇게 어려웠다. 시작부터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졌나 보다. 당장 누구한테 보여줄 것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써보자고 생각했다. 누군가 볼 수 있는 일기가 아닌, 나만 보는 내 소설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쓸 수 있게 됐나 보다. 그래도 언제 가는, 아주 먼 훗날에라도,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며칠 전에는 그냥 소설만 지긋이 쓰면 되는걸 남들은 뭐 하는지, 출판은 어떻게 하는지 김칫국부터 마시면서 헛짓을 했다. 알아보니 글 쓰는 법도 알려주고 코칭도 해주고 책도 내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거다 싶어서 얼른 결제(?)를 하고 하루 종일 생각해 보니, 그게 무엇을 위한 길인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만족? 출판 경험? 그것도 아니면 나 책 한 권 냈다 하는 보여주기식이겠지. 뭔가에 홀렸었나 보다 생각하며 그만뒀다. 자비출판은 몇 년 더 있다가, 그때도 답이 안 나오면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걸로.
내년에는 단편 소설을 많이 써볼 생각이다. 일단 쓰면서 부딪혀봐야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남의 글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면, 내년에는 남의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글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누가 보면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 같아도, 나 스스로는 내면의 나와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