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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Dec 29. 2023

햄버거 가게의 카페라떼


이른 아침부터 배가 고팠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평소보다 일찍 식사를 준비했다. 어제저녁에 먹고 남은 갈비찜에 잡곡밥, 오이 하나 썰고 김치도 꺼냈다. 아쉬우니까 계란 프라이도 하나.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으면서 천천히 식사를 했다. 후식으로 견과류를 꺼내 먹고, 그래도 아쉬워서 과자를 조금 먹었다. 오랜만에 과식이다. 배가 부르니 책을 읽는데 졸음이 솔솔 몰려온다. 이러다 책상 앞에서 잠이 들 것 같아서 침대로 갔다. 오늘은 편하게 한숨 자야지. 전기장판 스위치를 눌러 놓고 양치질을 했다.


엉덩이를 떼고 움직이다 보니 잠이 달아났다. 얼른 설거지를 끝내고 어디든 나가야겠다. 다시 전기장판을 껐다. 이불 안에 손을 집어넣어 보니 아직 뜨거워지지 않았다. 온기가 만져졌다면 눕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지도 모르는데 다행이다.




평소에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카페라떼가 당긴다. 동네 카페 중에 어디로 가볼까. 작은 동네라 그런지 카페가 꽤 많이 있음에도 규모가 크지 않다. 집에 있기가 답답해서 나가는 건데, 작은 카페 안에 답답하게 있기 싫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중에 조금이라도 시야가 좋은 곳을 떠올려 봤다.


아, 햄버거 가게에도 커피를 팔잖아? 비록 맛은 보장되지 않더라도. 난 지금 탁 트인 시야를 느끼며 뭐라도 하면 되니까 괜찮아.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햄버거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여기는 와이파이가 없단다. 네????? 물음표를 백만 개 찍고 싶은 심정이다.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한글 빈 문서를 불러온다. 띄어쓰기 검사도 되고 좋네. 하지만 다시 여기에 노트북을 들고 오지는 말아야지. 실시간 업로드를 하는 재미를 놓칠 수는 없다고.


커피는 1리터를 담아준다는 곳과 견주어도 양이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맛도 나쁘지 않다. 우유가 참 부드럽네. (간장이 참 짜다는 말과 비슷해 보이는 건 왜일까)


문득 떠올려 보니, 예전에는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햄버거 가게의 커피나 핫초코를 자주 마셨었다. 그 당시에 1천 원 정도면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생들과 햄버거를 먹기도 하고 때로는 감자튀김을 먹기도 했지만, 그중에 최고는 언제든 들고뛰어나갈 수 있는 따뜻한 커피였다. 분명 15분 뒤에 도착 예정이었던 버스가 갑자기 5분 뒤에 나타나기도 했으니까.




가끔 블로그의 <몇 년 전 오늘> 포스팅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짧은 글 몇 줄과 커피 한잔 사진이 담겨있다. 뭐라고 끄적대보고자 했던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다만 그때는 감성 사진 대신 전하고자 하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직접적인 사진이었고, 잘 쓰고 싶어 고민했던 흔적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내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렇다고 그때가 더 낫다거나 하는 마음은 아니다. 그때는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었고, 지금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깊은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일지라도, 내면의 성숙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10년 전의 내가 사소한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끄적거림을 남겨놓지 않았다면, 소중했던 추억들을 잊고 살았을 테니까. 그리고 오늘의 햄버거 가게를 흔하디 흔한 패스트푸드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말았겠지.




글을 쓰는데 다시 졸음이 몰려온다. 오늘의 졸음은 배가 불러서도 아니고 집에 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잠이 모자랐던 것 같다. 몇 달간 끊었던 커피를 간간이 마시기 시작하면서 수면 리듬이 살짝 흐트러졌다. 밤 10시에 잠들어서 5시면 개운하게 일어나던 것이, 요 근래에는 새벽에 한두 번씩 깬다. 커피와 이별해야 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다시 커피를 끊는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그냥 지금처럼 가끔 마시면서 살면 안 되는 걸까. 그 맛있고 중독성 강한 커피를, 과연 적당히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적당히 하는 게 힘든 나에게 말이다.


그 맛을 누리고 살 것인가, 아니면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수면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 두 가지 기로에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자꾸만 고민이 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선택하든 나에게 와닿는 타격감이 비슷해서라고 (좋아하는 스님께) 들었다. 결국 둘 중에 무엇이 되었든 그에 대한 책임만 확실히 하면 된다.


오늘은 결정하지 말아야지. 당장 내일이 될지 일주일 후가 될지 모르겠다. 커피가 다시 당기는 날에, 그때 다시 생각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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