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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Jan 05. 2024

읽는 대신 눈에 담으며

지난주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은 총 일곱 권이었다. 2주간의 반납기한 동안 일곱 권을 전부 읽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일부러 넉넉하게 빌려 왔다. 그 당시에는 재밌어 보여서 빌려온 책이라도 왠지 손에 안 잡히는 책이 있으니까. 더 싫은 건 주말에 읽을 책이 똑떨어지는 것이다.


한 권은 서평 쓰는 법에 관한 책이라 가볍게 읽어 넘겼고, 한 권은 다 읽고 얼른 리뷰도 남겼다.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소설이라 금방 읽혔다. 역시 좋았던 책은 리뷰도 술술 써진다.


남은 책은 다섯 권.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것을 골랐다. 무려 예약까지 해놓고 대기를 몇 번 기다려 빌려온 책이다. 기대감을 안고 읽어 내려갔다. 반 정도 읽었을까? 아니, 그보다 조금 더. 그런데 더 이상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읽었던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SF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닌가? 라기엔 너무 많이 읽어버렸고, 그렇게 읽기를 중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몇 장 읽고 말았으면 말았지.


이상하다 싶어서 다른 책으로 바꿔 읽기를 시도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실패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도입부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생각하며 읽어 내려갔다. 몇 장 넘기다 보니 이번에도 내용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지 못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렇게 주말 내내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내용이 머릿속에 자리 잡지도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독서를 중단했다. 설마 읽기는 이제 그만하고 글이나 쓰라는 신의 계시는 아니겠지? 아닐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읽을 시간에 쓰기를 시작했다. 세상밖에 나가지 못할 글이라도 일단 써보자.


하지만 나는 읽고 싶었다. 이렇게 돼버린 이유를 알고 싶었다. 특별히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옆집이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말이 지나고, 해가 뜨자마자(?) 짐을 챙겨 출근하는 신랑을 따라나섰다. 이번에는 도서관이 아닌 서점으로 향했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보고 싶었다. 제목만이라도 쭈욱 훑어보고 기운을 얻어보자고 생각했다. 생각지도 않던 음식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 읽고 싶어지지 않을까. 내 증상은 그런 것과는 다른 의미일까.



처음에는 멍하게 바라보면서 분위기를 즐겼다. 책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는 감성에 취해.


바다 뷰는 탁 트여서 좋지만 책장 뷰는 그 오밀조밀함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뭐라도 한 권 사들고 가서 읽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일으킨다. 아, 나는 여기 책을 사러 온 게 아닌데. 읽던 책을 마저 집중해서 읽고 싶을 뿐인데.   



(결국 끊을까 말까 했던 커피는 끊어내지 못했다.) 걸어오느라 데워진 몸을 아이스커피로 식히고, 아침 식사로 빵을 곁들였다. 먹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 모습을 구경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고를지 궁금하다. 당장 끌리는 책을 충동적으로 사볼 결심을 했을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찾았을까, 베스트셀러라서 믿고 샀을까.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사색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헤르만 헤세-


어쩌면 나는 사색할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끊임없이 읽어 내려가고 써 내려간 지난날을 돌아봤다. 작년에는 일주일에 소설책 두 권 정도를 꾸준히 읽었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 주일에 세권 정도를 읽었다. 나에게는 오늘처럼 아무것도 읽지 않고 그냥 눈에 담기만 하는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가기 전, 소장하고 싶은 책이 있는 쪽으로 갔다. 한 번에 전부 사버리면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을 더 이상은 느낄 수 없을 테니까, 더 사고 싶어도 한 달에 딱 한 권만 사기로 결심했다.


나 좀 데려가 주세요, 미소 짓고 있는 아이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면 조금 더 저렴하겠지만 바로 사서 가방에 넣어오는 그 느낌까지 몇 백원을 더 주고 사 온다. 어차피 같은 책일지 몰라도 물류센터 직원이 고른 게 아닌 내가 소중히 골라온 내 책이다.



며칠 동안은 책 읽기 대신, 편안히 글자와 그림을 눈에 담아내기만 해 봐야겠다. 그러다 눈에 띄는 문구가 있으면 읽어보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전체를 읽게 되겠지.


이제 한 해의 시작이잖아. 천천히 시작해서 꾸준히 달려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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