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보맘의 육아일기_6
쌀을 씻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똘이를 임신했을 때, 실수로 곰팡이가 핀 쌀로 지은 밥을 먹고 무작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곰팡이가 핀 쌀이 1급 발암물질이란 걸 뒤늦게 알고서 너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괜찮다. 아무 일 없을 거다.
엄마는 딱 두 마디를 건넸고, 나는 전화를 끊고도 곰팡이가 핀 쌀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쉬지 않고 검색을 했지만, 살면서 엄마가 괜찮다고 한 건 정말 거의 다 괜찮았으니까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초조한 밤을 보냈던 기억이,
문득 쌀을 씻다가 생각이 났다.
그 후에도 나는 엄마에게 많은 걱정거리를 쏟아냈다.
똘이에게 해열제를 잘못 먹였다가 저체온 증상이 나타났을 때에도,
(당황한 나머지 야밤에 울며불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다.)
똘이가 황달로 응급실에 입원을 했을 때에도, 똘이의 몸에 동전습진이 생겼을 때에도, 치즈를 먹이고 두드러기가 올라왔을 때에도 나는 어김없이 엄마를 호출했다.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고 토로를 하며 나는 엉엉 울거나 한숨을 푹푹 쉬어댔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다 괜찮다고 했다.
엄마 말은 다 맞았다.
내 걱정은 전부 기우였고, 똘이는 건강하게 성장했다.
똘이가 밤에 자다가 강성울음을 내며 깰 때 나는 하고 있던 집안일을 제쳐두고,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는 똘이에게 달려간다.
똘이를 토닥이면 똘이는 더듬더듬 내 몸을 만지고, 다시 잠에 빠져들곤 한다.
똘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살결과 냄새를 느끼며 다시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서른이 훌쩍 넘었지만, 엄마가 괜찮다는 말에 퍽 안정을 되찾는 나는 아직 돌도 안 된 똘이랑 다를 바 없다.
똘이에게 내가 있고, 내게 엄마가 있듯이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
엄마가 최선을 다해 똘이를 놀아줄 때면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엄마가 손주를 대하는 얼굴이 나를 바라보던 외할머니의 얼굴과 퍽 닮았다.
꾸밈없이 환한 미소, 손주에게 라면 전부 다 내어줄 것 같은 다정하고도 들뜬 목소리.
그렇다면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서 사랑의 개념을 배워가는 똘이의 얼굴은 어릴 적 나의 모습이려나.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우리 곁을 떠난 지 딱 십 년이 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온다고 믿고 있다. 내가 똘이를 키우는 걸 보고 장하다고 말해주고 있을 것이고, 똘이처럼 조그맣던 아기가 언제 이렇게 훌쩍 자라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거냐며 놀라워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는 늘 가슴이 사무치게 슬프고, 그래서 나는 엄마를 영원히 보내주지 못할 것 같다.
오래오래 건강히, 우리 곁에 머물며 뭐든 괜찮다는 말을 건네주기를.
내가 외할머니를 통해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의 얼굴을 익혔듯이, 똘이도 엄마를 통해 사랑을 학습하려나.
똘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 속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왜 겹쳐보이는 걸까.
손주를 바라보는 두 분의 표정은 너무나도 닮았다.
아마도 같은 마음이기에 그러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