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리아주
김치와 와인이라… 선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김장소에 굴이나 수육울 곁들이는 배추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 와인은 어떤 음식과도 페어링이 가능하다. 그만큼 맛과 향이 다양하고 선택의 폭도 넓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취향도 존재한다. 특정 음식과 특정 와인이 최고의 궁합을 이룰 수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므로 다양하게 매칭해보며 ‘의외의 꿀조합’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나도 김장을 마치고 소주나 막걸리가 아닌 와인을 꺼내들었다.
1. 배추쌈과 굴
이 맛에 김장하지!!!
대체로 고추의 매운맛은 알코올을 두드러지게 만든다. 또한 자극적인 맛이 와인의 풍미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에 알코올이 낮고 잔당감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이나 샤르도네를 추천한다.
나는 굴과 마리아주의 정석으로 꼽히는 프랑스 샤블리를 선택했다. 샤블리의 미네랄리티가 절인배추와 도 조화로웠는데 스파클링 와인도 매운맛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여기서 잠깐!! 스파클링 와인을 프랑스에서는 샴페인, 스페인에서는 카바, 이탈리아에서는 프로세코, 독일에서는 젝트라고 부른다. 이름이 다른만큼 매력도 제각각이니 비교해도 좋을 듯!
2. 슈바인 학센
홈파티용으로 슈바인 학센을 준비했다. 수육이 더 어울리겠지만 돼지고기를 삶다보면 집에 냄새도 나고 비주얼도 고려하고 색다른 맛도 선보이고 싶어서… 요즘 홈파티나 캠핑용 학센이 잘 나오니까.
뜨거운 물에 30분 정도 담갔다가 200도로 맞춘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 양면을 15~20분 정도 구워주면 된다. 다만 독일식당에서는 포크로 두들기면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껍질이 크리스피하고 짭짤했던 것에 비해 쫄깃하고 달큰한 족발에 가까웠지만 그래서 보쌈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족발이나 보쌈도 와인안주로 제격인데 보통 닭과 돼지고기는 부드러운 육질과 풍미를 살려주는 피노누아를 추천하는데 나는 가성비 좋은, 일명 정용진 와인으로 유명해진 카멜로드 몬테레이 피노누아를 선택했다.
음식과 와인의 조화는 인간관계를 닮았다. 아주 비슷하거나 완전히 다를 때에 끌리기 마련이니. 오죽하면 결혼이란 단어에서 비롯된 마리아주라고 했을까. 하지만 너무 비슷해서 혹은 방향이 달라서 맞지 않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그러니 부담없이 페어링 했다가 과감히 선수교체를 외칠 수 있는 친선경기 정도로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 편하다.
3. 홍합탕
친구들과 가볍게 샤블리로 시작했다가 이야기가 깊어지면 부드러운 피노누아로, 그러다가 뜨끈한 국물로 고단한 속을 풀었다. 개인적으로 맵고 뜨거운 음식은 와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몸과 마음의 컨디션과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니까.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는 싯귀를 떠올리며 가을에는 따뜻한 마음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읊조려본다. 그리운 추억과 그리워질 맛에 대하여… 거기에 맞는 와인을 골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