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해피는 누구입니까?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는 봉석에게 아이 한 명이 다가왔다. “할아버지, 만져도 돼요?” 아이는 예닐곱쯤 으로 보였다. “보기만 하렴.” 아이가 양손을 뒤로 하고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내 엎드려있던 해피가 고개를 들었다. 꼬리가 느리게 흔들렸다.
“으악! 괴물이다!” 아이가 뒤로 물러서며 까르륵 웃었다. “예끼, 이놈!” 장난스럽게 대응했으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봉석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면서 유모차 차양을 반쯤 내렸다.
해가 길었다. 저녁에도 환했던 하늘이 여덟 시가 넘어가자 노을도 없이 어스름이 빠르게 번졌다. 매미 울음소리처럼, 여름이 스러져가고 있었다.
해피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넘은 나이였다. 그래도 건강한 편이었는데 삼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봉석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아내가 세상을 뜨고 나서 해피가 이상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피를 데려온 건 아내였고 유난스러울 정도로 애지중지 키웠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토이푸들이라고 했다. 어디까지나 모견이 그렇다는 거고 부견은 어떤 종인지 몰랐다. 공원을 떠돌던 모견은 세 마리 새끼들과 구조되었고 아내가 그 중 한 마리를 데려온 모양이었다. 해피는 이마에 하얀 털이 나있고 몸통은 갈색과 은색이 섞여서 오묘한 분위기를 냈다.
“얘 좀 봐요. 신비롭지 않아요?” 아내는 며칠만 맡아서 키우는 거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을 거란 걸 봉석은 아내의 표정으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화를 냈다. “상의라도 해야 할 것 아니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해피를 품에 안았다. “며칠만 봐주는 거라니깐요. 당신도 강아지 좋아하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어릴 적에 단독주택에서 개를 키웠고, 그 아이가 그립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떠돌이 개한테 먹이를 챙겨줬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 일이었다.
“에잇!” 봉석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언짢은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저 심장만큼이나 작은 녀석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봉석은 분하고 서운했다.
예상대로 아내는 녀석을 보내지 못하고 “해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두 아들 내외는 물론 손주들까지 해피를 좋아했다. 부쩍 집에 오는 횟수도 늘어났다. 명절이나 생일 아니면 연락도 없더니만. 그러면 뭐하나! 해피만 찾는 걸. 집안에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봉석은 소외감을 느꼈다. 자신만 빼고 모두 ‘해피’한 거 같았다.
자식도 다 소용없어! 아버지가 개만도 못하지!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해피는 봉석에게 애교를 부렸다. 무릎에 펄쩍 뛰어오르는가 하면 장난감을 물고오거나 배가 보이도록 벌러덩 눕기도 했다. 건설 회사를 퇴직한 봉석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는데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는 날이면 꼬리 흔드는 걸로는 성에 안 차는지 해피는 봉석의 발과 다리에 얼굴을 부비며 어쩔 줄 몰라했다. 밤새 기다렸다는 듯이.
그때마다 봉석은 “저리 가라! 잡종아!”라고 했지만 그런 해피가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넉살 좋은 녀석이 고맙기도 했다. 아내가 췌장암에 걸리기 전까진 말이다.
집에 돌아온 봉석은 해피를 포박하듯이 얼굴과 목을 부여안았다. 두 종류 안약을 번갈아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넣어야 했다. “옳지! 잘했다.” 몸을 뒤틀던 해피는 봉석이 힘을 풀자마자 비적비적 안방으로 향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아내가 누워있던 이부자리는 용케도 찾아갔다. 얼마 전 해피는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선천적으로 물이 빠지는 우각이라는 공간이 좁아서 안압이 높아지는 거라고 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안구를 적출해야할지도 몰랐다. 하얗게 변한 눈동자가 안쓰럽기 그지 없었다. 봉석은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 같았다.
아내는 췌장암 선고를 받은 지 석 달 만에 세상을 떴다. 간까지 전이 된 상태였다. 왜 몰랐을까? 입맛 없다면서 밥도 안 먹고 누워만 있었는데. 봉석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병원에 가자고 잔소리를 해도 아내는 귀찮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아내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아프다고 하질 말던가!” 그때 소리를 지른 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119라도 불렀다면 나았을까? 봉석은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전복죽을 사왔다. 아내는 억지로 한 입 먹으려 했으나 목으로 넘기질 못했다. 속이 불편하다고 했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없었다. 눈에 띄게 체중이 빠져서 더는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첫째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기력이 없나보다.” 그랬더니 보약을 지어 보냈다. 아내는 그것을 몇 번 먹나 싶더니 모두 게워냈다. 그제야 병원에 간 거였다. 바보 같게도. 아내는 병원을 나서며 미안하다고 울었다. 정말 바보 같게도 말이다.
그때부터였다. 해피는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봉석이 아내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밥상을 차려오고 물과 약을 가져올 때마다 해피는 콧등을 실룩거리며 봉석에게 으르렁 거렸다. 배변하거나 물을 마실 때만 거실에 잠깐 나올 뿐이었다. 봉석도 일을 그만두고 아내 주변을 맴돌았다. 아내는 한결 편해보였다. 죽도 몇 술밖에 먹지 못했지만 웃으며 말했다.
“좋네요. 당신에게 이런 대접도 받아보고 우리 해피도 항상 옆에 있고. 해피해피 하네요.”
봉석은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해피가 똥을 얼마나 쌌는지, 날씨는 어떻고 티비에 누가 나왔는지. 그런 소소한 일상을 나눠 본 게 얼마만인지. 사십오 년을 살았건만 다시 신혼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세탁기 작동법이나 행주 삶는 법, 나물 무차는 법을 아내는 자세하게 알려줬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듯 세제 종류와 봉석이 좋아하는 청국장, 콩나물국, 두부 양념장 등등 생각이 날 때마다 노트에 적어두었다. 그럴 때는 자뭇 진지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겐 아직 알리지 말아요. 다들 살기 바쁠 텐데.” 라고 어찌나 당부하던지. 봉석은 “걔들 걱정은 뭐하러 해!”라고 받아쳤다. "아무튼 그렇게 해요.” 아내의 심중을 모르진 않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던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부모들은 아프면 왜 죄인처럼 구는 걸까?
서운했을 것이다. 봉석에겐 티를 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내의 임종을 지킬 수 있게 해줬으니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해피 덕분이었다. 해피가 낑낑대서 가봤더니 아내가 쓰러져 있었다. 봉석은 아내를 응급실로 옮기면서 아들들에게 차례로 연락했다. 직감적으로 마지막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엄마의 뜻이었다.” 봉석은 변명처럼 말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간간히 집에 들를 때마다 안방과 거실은 난장판이 돼있었다. 해피는 아내의 이불에 엎드려 꼼짝하지 않았다. 아내가 보고 싶어할 것 같아서 납골당에 데리고 가려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이 년 가까이 그랬다. 배변 실수도 잦았고 모든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봉석은 사료통과 물그릇을 아예 안방으로 옮겨주었다. 아들 내외는 못 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봉석에게는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해피가 예전처럼 애교를 부리면 모르겠지만 아내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미울 만도 했다. 해피를 쓰다듬으려는 손주가 물었을 땐 정말이지 눈앞이 깜깜했다. 한번은 “안락사 시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왔다. “병원비도 만만차 않을 텐데, 아버님도 참!” 설겆이를 하면서 며느리끼리 하는 대화였다. 봉석은 못 들은 체 했다. 티비먼 보던 아들들도 서둘러 일어섰다.
당신도 외로웠는지.
문득 묻고 싶은 밤이었다.
오늘도 봉석은 해피와 산책을 나간다. 해피는 유모차에 앞 다리를 꼿꼿이 펴고 앉는다. 앞이 보이지 않을 테지만 바람을 느끼는 듯 했다. 아내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 원망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를 끔찍이도 아꼈던 사람. 고마운 마음도 있겠지. 아내가 누워있던 석 달 동안 불안도 느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걸 알 리 없으니 여전히 아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봉석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움이란 그런 것인가? 구름처럼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하며 찾아온다.
가끔 해피는 허공에 대고 ‘멍!’하고 짖는다. 그때마다 봉석은 심장이 쿵 떨어져 주변을 살펴본다. 아내가 부른 것만 같다. 해피야! 하면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라는 아내의 말이 떠올라 또다시 심장이 쿵 떨어진다. ‘행복하다는 거요?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요?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봉석도 “해피야!”하고 부른다. 해피가 유모차에 납죽 엎드린다. 벌써 피곤한 모양이다. “힘드냐?”고 묻는 봉석의 숨이 차오른다. 봉석은 유모차를 세우고 놀이터 벤치에 앉는다.
“내일은 병원 가는 날이구나.”
늙으면 병원 가는 것이 일상이라던데 그럴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지옥이지. 그러면서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연금과 약간의 저축으로 살아가지만 아프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다. 보험도 여든까지만 보장된다니 내년부터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진즉에 해약해버릴 걸! 그보다 봉석은 해피가 마음에 걸린다. “안약 넣으러 가자! 의사선생님한테 칭찬 받아야지.” 봉석은 유모차를 돌려 집으로 향한다.
“저녁엔 고구마 삶아먹을까?”
거실에서 땅을 밟은 적도 없는 해피의 발을 닦이던 봉석이 내친김에 목욕을 시키기로 한다. 해피를 데리고 병원가는 것이 봉석에겐 유일한 외출이었다. 소풍처럼 들뜬다. 봉석은 안약 넣는 것도 잊어버리고 욕조에 물을 받는다. 그 새 해피는 안방을 찾는다. 봉석은 물에 아로마 거품을 푼다. 털이 듬성듬성 빠져서 신경 써야한다. 물이 보랏빛으로 변하며 기분 좋은 향이 난다. 봉석은 해피를 부르려다가 멈칫 한다. 자꾸만 눈이 안 보인다는 걸 잊는다.
욕실에서 나가려던 봉석이 그대로 미끄러진다. 욕실 슬리퍼가 벗겨지면서 문지방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어이쿠! 중심을 잃고 상체가 뒤로 넘어간다. 엉덩이와 허리께가 얼얼하다. 일어서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한심하다, 한심해. 봉석은 대자로 누워 눈을 감는다.얼마나 지난 걸까? 짤짤짤, 해피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짤짤. ‘녀석, 발톱도 잘라야겠군.’ 이라고 생각하는데 빰에 까칠한 감촉이 느껴진다. 해피가 봉석의 얼굴을 핥는다. “간지럽다.”면서 봉석이 웃는다. 눈이며 입술이며 할 것 없이 해피가 마른 혓바닥으로 연신 핥아댄다. 침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겠지만 봉석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정말 해피해피하네.
아내가 보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