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타 Oct 03. 2021

늙은 요양보호사의 하루

귀는 살아있다

진저리 치듯 잠에서 깼다. 꿈을 꾼 것 같은데 아무 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여기가 어디인가? 쇼파에서 몸을 일으켜니 창밖에 박명이 번지고 있었다. 창길은 비스듬히 앉아 휴대폰에 설정해놓은 알람을 껐다. 6시에 맞춰 놓았지만 항상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잠에서 깼다. 마치 몸 안에 알람이 먼저 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밤새 한번도 깨지 않은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병실 한 켠에서 지내다보면 잠자리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데 보조침대에서 쪽잠을 잤던 것에 비하면 쇼파는 너무나 훌륭했다. 등받이가 있으니 뒤척여도 떨어질 위험 없고 무엇보다 다리를 마음껏 뻗을 수 있었다. 창길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왔다.

당직 간호사가 창길을 쳐다보았다. 모니터 앞에서 졸다가 기척에 놀란 모양이었다. 피곤이 그득한 눈빛이었다. 간호사가 서너 명 상주하는 다른 층과는 다르게 혼자 밤을 새야하니 지루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다인실이 몰려있는 다른 층보다야 편하긴 할 테지만 말이다. 실장도 창길에게 편한 자리라고 소개 했다. 의미는 다르지만 환자가 거동을 못할 뿐더러 의식이 없다고. 게다가 1인실을 쓰는 개인간병이니 요양병원 보호사에게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다. 병이 깊어질수록 예민해지기 마련이겠지만 요양보호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머리채를 잡거나 발길질을 해대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성추행을 견디다못해 그만 두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환자를 가족처럼’이라는 슬로건은 홍보문구일 뿐, 요양보호사 입장에서는 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천국이었다. 냉장고와 수납장도 넉넉한 데다가 개수대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작은 조리대까지 있었다. 15층에서 마주보이는 풍경도 과히 장관이었다. 블라인드를 올리면 창문만큼이나 널찍한 하늘이 펼쳐졌다. 1인실을 처음 접해본 창길은 천국같은 이곳에서 오래오래 머물기를 산지신령님에게 빌고 또 빌었다.  


“고생 많습니다.” 창길이 인사를 건네자 당직 간호사가 “네”하면서 세면도구로 시선을 옮겼다. 창길은 손에 들고 있던 칫솔과 수건을 들어보이며, “환자분이 주무시는데 방해될까봐요. 의식이 없으셔도 소리는 들리지 않겠습니까?” 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병실에 붙어있는 개인화장실을 이용하는 건 아무래도 계면쩍었다. 그래서 창길은 급한 용변이 아니면 주로 공용화장실을 이용했다.

1인실과 2인실만 있는 VIP 병동이라 그런지 화장실도 널찍하고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창길은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이순이 넘다보니 얼굴에 저승꽃이 늘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수록 외모에 신경이 쓰였다. 까맣게 머리염색도 하고 희끗해진 수염은 면도로 밀어냈다. 아직은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서 젊은 요양보호사들이 많아진 까닭도 있었다.


창길은 3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일하는 순영이도 베이비시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전직한 케이스였다. “아기보는 일은 같지요. 어린 아기에서 늙은 아기로 바뀌었을 뿐이에요.” 창길과는 열 살 넘게 차이가 났지만 동향사람인데다가 간병인알선회사도 같다보니 순영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창길은 병실청소를 하고있는 순영을 불렀다. 침상이 8개인데 하나만 빼고 모두 차있었다.  쓰레기를 분류하던 순영이 손을 털고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 “혹시 그거 있나? 막대사탕처럼 생긴, 그거 있잖아.” 순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창길이 이 닦는 시늉을 하자 “아!”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말씀하시는 거지요?” 순영이 일회용 비닐포장이 되어있는 스펀지브러시를 가져왔다. 아무리 콧줄로 식사를 한다하더라도 입안을 닦아줘야하는데 칫솔보다 거즈나 스펀지가 적당했다.  “맞아. 이거! 손가락으로 닦이는 게 쉽지 않더라고.”, “손가락으로요?” 순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무과에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모르더라고. 구강청정제만 신청했지.”, 순영이 “아저씨”하면서 창길을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그런 말하시면 안 됩니다.”, “왜? 뭐가?”, “더럽다고 하지 않겠어요.” 순영이 주변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내용인 ,  창길이 맡게  환자는 다인실에 입원해있었는데 CRE 균에 감염되었다고 했다. 부유한 집이라서 VIP 병동에 있는  아니라 격리병동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1인실로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군.” 창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제 아들이 찾아와서는 한바탕 난리를 부렸어요.” 소리를 낮출수록 입모양이 커졌다. “감염 원인이 우리 때문이라고.  조선족을 쓰냐고 어찌나 염병을 떨어대던지.” 그런 식으로 차별 받는 것이 낯선  아니었다. ‘조선족은 더럽다 공식이 언제나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니까. 아무리 청결에 신경을 써도 소용없었다. 그보다 순영은 억양이나 사투리부터 고치라고 했다. 그게  빠를지 모르겠다. 조선족이라는  모르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니?”, “어떻게 되긴요. 공짜라고 하니 금방 온순해지지 말입니다.” 순영도 동향만 있을 때면 억양이 뒤섞였다. “그러니까 아저씨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성질머리가 보통 아니더라구요.” 창길은 “하고 돌아섰다.    


아들이 문제 삼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CRE균은 박테리아 일종으로 병실 위생상태와 무관하지 않았다. 도뇨관과 중심정맥관을 꽂고 있으면 그만큼 감염에 취약했다. 다인실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한 명 또는 두 명의 요양보호사가 여러 환자를 돌보다보니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그들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족 운운하는 것은 인격모독과 다름 없었다.

병원측에 부탁한 걸 보면 개인적으로 요양보호사를 구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 병원과 계약된 간병인알선회사에 조선족 밖에 없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다. 실장은 한국인 요양보호사를 받지 않았다. 자격조건이 우월할지는 몰라도 이미 업체 간에 카르텔이 형성돼 있었다. 역차별인 셈이었다. 소수라서 주목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차별받기 마련이려니.

창길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빨간 불이 층을 더해갈 때마다 설레는 마음은 사그라지고 천국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병실로 돌아오니 환자가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빛과 어둠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푸르스름하게 변한 눈동자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창길이 다리를 주무르며 “어르신, 편안히 주무셨어요?”하고 묻자 가르릉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창길은 목관에 석션팁을 삽입하여 가래부터 빼냈다. 간호사가 하는 일이지만 요양보호사도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제때 가래를 빼주지 않으면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창길은 소변주머니를 확인하고 환자를 옆으로 돌려 기저귀를 빼냈다. 여전히 변이 물렀다. 대야에 물을 받아와서 젖은 수건으로 환자 엉덩이를 닦고 약과 크림을 발랐다. 욕창까지는 아니었지만 붉게 부풀어 오른 부분이 있었다. 다시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서 등과 다리를 닦았다. “시원하시죠?” 순순히 몸이 접혔다 펴는 환자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의식이 없기 때문일 테지만 환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늙는다는 건 치욕을 견디는 일.


요양보호사에게 몹쓸 짓을 하며 그 치욕을 되돌려주는 환자도 있지만 앙상하게 남은 자존감을 생각한다면 그마저도 가여웠다. 창길은 레버를 돌려 침대 상체부분을 올렸다. 순영에게 받아온 스펀지블러시에 구강청결제를 묻혀서 입안을 닦고 세수를 시켰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빗어넘기니 한결 깔끔해졌다. 양손을 담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시간을 확인했다. 10시부터 의사가 회진을 돌았는데 그때마다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창길은 마지막으로 환자를 확인하였다. 발톱 정리까지… 완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왔다. 창길은 한걸음 뒤로 빠져있었다. 아들이 소동을 부렸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의사 표정이 냉담하게 느껴졌다. 창길은 테이블에 놓아둔 손소독제와 물티슈를 힐끔거렸다. 일부러 꺼내놓은 건데 의사는 그것에 눈길도 주지 않고 간호사에게 몇 가지 처방을 내리고 병실을 나섰다. 창길이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자 간호사가 눈인사를 하면서 미소 지었다. 신뢰를 쌓아가는 건 인상과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걸 창길은 알고 있었다. 조선족이라는 편견과 맞서는 최대의 무기는 겸손과 성실이라는 것도.


냉장고에서 경관섭취용 캔을 가져와 환자 콧줄로 주입했다. 눈에 띄게 살이 빠졌지만 요양보호사가 임의대로 식사량을 조절할 수는 없었다. 급식관 세척까지 마치고 창길은 구내식당에서 공기밥을 받아왔다. 반찬까지 받으려면 별도로 식권을 구입해야 했기에 시장에서 사온 장아찌나 김치로 대충 떼우는 식이었다. 간병비를 개인 통장으로 받으니 당연한 처우였다. 간병인알선회사에 20프로를 내고 고향집에 돈을 부치고나면 남는 것도 없었다.

가끔 순영이가 반찬을 챙겨줬는데 오늘은 보호자가 간식꺼리를 사왔다고 롤케이크 한조각과 오랜지쥬스를 들고 왔다. 순영도 1인실은 처음 와봤는지 문 사이로 병실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너무 좋네요.” 창길은 괜시리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래서 잠깐 들어오라고 병실 문을 활짝 열었다.

순영은 병실 안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성질머리 아들이 조용해진 이유를 알겠네요. 이렇게 좋은 곳을 공짜로 쓰다니 횡재한 거죠.” 하기야 아들이 왔을 적에 별 말을 하지 않아서 창길은 그런 소동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순영은 테이블에 롤케이크와 오렌지쥬스를 내려놓으며 쇼파에 앉았다. “이것 좀 드셔보세요. 보호자가 사왔는데 얼마나 극진한지. 성질머리 아들하고는 비교도 안 돼요. 요즘 세상에 그렇게 갑질을 해대면 본인만 손해라는 걸 모르나? 돈 받고 하는 일이지만 마음 가는 곳에 눈길 한번 더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환자한테는 우리가 갑이죠. 안 그래요, 아저씨?” 그러자 환자가 다리를 움찔거렸다. “어머나!” 순영이 화들짝 놀라며 “식물인간 아니였어요? 그 아들 성질머리가 아버지를 닮았나봐요.”라고 귀엣말을 했다.


창길은 환자가 덮고있는 담요를 걷어올려 다리를 주물렀다. “어르신은 복도 많아요. 든든한 아드님도 두시고. 어르신이 아프시니 아드님은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어요..” 순영이가 한 말에 반응했을 리 만무했지만 창길은 변명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저도 아들이 한 명 있는데 먹고 살기 힘들어서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 했지 뭡니까.” 창길은 결혼 이후로 발길이 뜸해진 아들을 생각했다. “저들 행복하면 그만이죠. 부모가 더 바랄 게 있겠습니까.” 부모라고 바라는 것이 왜 없겠는가. 환자가 눈을 깜빡이며 거품 섞인 침을 흘렸다. 창길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아주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마치 화답 받은 기분이었다. “중국 땅덩어리가 좀 넓어야지요. 아흔 넘은 노모도 있는데 마누라가 고생입니다. 한평생 호강도 못 시켜주고. 가난이 족쇄라고 죽어라 살아도 늘 부족하니 말입니다.”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다보니 괜스레 울적해졌다. “제가 별 말을 다하네요. 어르신… 우리 아버지 같아서 그랬나봐요.”


창길이 나박나박 노래를 불렀다.

의식이 없다 해도 소리는 들을 수 있으니.

아버지 들리시나요? 당신의 18번 레퍼토리.


오후에는 간호사가 항생제와 알부민 주사를 놓았다. 창길은 환자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담요를 가슴팍까지 덮어주었다. 그동안 화장실에서 수건과 속옷을 빨고 소변주머니를 갈았으며 병실 바닥을 청소했다.그리고는 환자 곁에서 잠깐 졸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끝>

이전 01화 슬픔은 다른 곳에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