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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Oct 18. 2021

슬픔은 다른 곳에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

장례식을 마쳤다. 집에 도착하니 거실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효진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쇼파에 앉았다. 언제 진눈깨비가 흩날렸냐는 듯이 하늘은 말갛게 개어있었다. 남편이 “고생했어.”하고 어깨를 토닥였지만 효진은 대답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서서히 물러나는 비늘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뜰 것만 같아서… 모든 게 꿈만 같았고 3일동안 벌어진 일련의 일들이 아득하게 여겨졌다.


아버지가 얼마 버티시지 못할 거라는 전화를 받은 건 새벽 두 시였다. 효진은 남편을 깨울 틈도 없이 방에 불을 켜고 옷장을 열었다. 기척에 놀란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효진에게 묻지도 않은 채 양복을 꺼내입고 차키를 챙겼다. 현관을 나서면서야 효진이 “아빠가 돌아가실 것 같대.”라고 말했고 남편은 “장모님께는 내가 전화 드릴까?” 하고 물었다. 효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어떤 예감이 있었던 건지 엄마도 통화연결음이 울리기 무섭게 전화를 받았다. 효진이 “아빠가 위독하시대요.”라는 말에 “그래, 지금 가마.” 하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운전을 하실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아버지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 초가 급했다. 효진과 마찬가지로 엄마도 탄식을 터뜨릴 겨를도 없이 병원에 도착했다.


문제는 병원에서였다. PCR 검사를 해야한다는 거였다. 일단 검사를 하고 방호복으로 갈아입으려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엄마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편이 방호복을 펴서 엄마에게 입혀주었다. “장모님 모시고 올라가.  명밖에   거야.” 그런데 직원이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앞을 막아섰다. “아빠가 돌아가신다고요.!” 효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그때 간호사가 내려오더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고는 효진과 엄마를 입원실이 있는 3층으로 데려갔다. 복도에 당직의사와 간호사들이 심상한 얼굴로 조용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입원실에 들어서니 침상마다 커튼이 쳐있었고 아버지 머리맡에만 미등이 켜있었다. 간호사는 효진과 엄마만 아버지 침상 곁에 두고 커튼을 쳤다.


엄마가 어버지 손을 접았다. 막상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직 따뜻하구나.” 엄마도 눈물이 삼켜진 목소리였다. 오히려 다른 침상에서 이불이 들썩이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커튼 사이로 그만 나오셔야 한다고 낮게 말했다. 나는 아버지 귓가에 대고 “우리 아빠, 힘들었겠네. 이제 편하게 쉬세요.”라고 속삭였다.


간호사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장례식장부터 알아보세요. 빨리 안치실로 모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알려주었고 로비로 내려오자 남편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의도 성모병원에 자리가 있대.” 그 다음부터는 바통을 이어받듯 운구이송부터 장례식장, 상조회사까지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상조회사 직원을 만나 금액별로 나눠진 장례상품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음식을 체크할 때는 마치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효잔은 직원이 추천한대로 빈소에 맞는 제단장식을 고르고 추모공원 스케줄에 따라 발인시간을 정했다. 엄마는 “선생님이 전문가이신데”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나질 않는다고?”

효진은 친구의 말을 맏지 않았다. 일 년 전에 어머니를 잃은 친구는 장례식을 어떻게 치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때는 믿을 수 없던 그 말을 엄마가 효진에게 그대로 했다. “아빠가 어땠지?” 그런데 효진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상하게도, 분명 꿈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은 기억나질 않고 아스라한 느낌만 남아있는 것처럼, 참 이상하게도 말이다.


그제야 슬픔이 밀려왔다. 조문을 받다가 울음이 터진 것과는 결이 달랐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을 살다가 아무 일도 없었는데 기습적으로 슬픔에 포박되어 옴짝달짝 못하는 상태가 되거나 둑이 무너진 것처럼 난데없이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엄마도 그러했나? 기억이 나질 않는 건 어떤 방어기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영영 잊혀질까봐 두려웠다. 효진은 안치실과 입관할 때의 아버지 얼굴이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고 엄마에게 설명했다. 그때와 추모공원에서 화장한 유골을 확인할 때는 효진과 남편만 들어갔기 때문에 엄마가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다. 엄마는 그 모습이 머릿속에 붙박힐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뒷걸음치던 엄마는 효진이 건네준 유골함을 안으며 병원에서처럼 “아직 따뜻하구나”하고 기도처럼 읊조렸을 뿐이었다.  


효진은 가끔 슬픔의 정체에 대해 궁금했다. 자신을 덮치는 불안과 두려움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인지, 울타리를 잃은 상실감인지, 장례라는 큰 일을 치뤘던 경험들의 잔상 때문인지, 회한인지 어쩌면 이 모든 것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그 무엇이 한데 뒤엉킨 건지 알 수 없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엄마의 안부를 물으며 말했다. “우리 엄만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아기가 되었어.” 효진은 그 의미를 금방 알아차렸다. “우리 엄마도 그래. 그러다가도 당신을 아기취급하지 말라고 하셔.” 사십구재를 치를 때까지 감정은 변덕을 일으켰고 예민해진만큼 쉽게 상처받고 쉽게 화가 났다.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는 엄마에게 같은 말로 위로하는 일도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이었다. 하루에 수없이 전화를 해대던 엄마가 “너를 보면 아빠 생각이 나서 힘들구나! 그러니 올 필요 없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할 때는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역할이 끝난 건가?


함께 애도의 시간을 보냈던 가족들도 더는 슬픔이 넘치지 않게, 아니 그것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다시금 연락이 뜸해졌다. 예전과 다르게 거리가 느껴졌고 서로의 슬픔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듯이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가끔 효진은 엄마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아버지와 남편은 그 빈자리를 비교할 수 없고 같은 일을 겪었더라도 슬픔의 빛깔과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슬프지 않게 그리워지는 날이 있을까?

시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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