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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by 번트엄버

종이에 그림을 그리다보면

자칫 잘못그린 부분이나

삐져나간 선들을 정리하기 위해

지우개를 쓰곤 한다.


소묘라고 불리는 연필선을

쌓아 나아가야 완성을 할 수 있는

그림의 경우에 지우개는

선을 지우는 경우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연필로 쌓은 톤을 종이에 눌러서 넣는데

쓰이기도 하고

화이트 펜슬같이 연필선을 지워나가며

하이라이트를 묘사할 수도 있다.


저마다의 목적으로 쓰이는 물건들이

다른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사건과 사고에

휘말려 삶이 꼬이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마다 지우개의 쓰임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지우개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우개라는 이름도 원래의 용도도 말이다.


우리가 사는 삶도 그렇지 않은가?

열심히 미래를 꿈꾸며 살다가도

시련과 도전에 좌절하고

부서지기고 무너지기도 하고

성공과 행운으로 또 다른 즐거운

일들도 생기기 나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변해서는 안된다.

지우개처럼 말이다.


그림을 많이 그린 부분을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운다고 해도 종이에 자국이 남게 마련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우리의 선택과 과정들이

고스란히 뇌리에 몸에 세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지우개는 많이 쓰이고 나면

버리고 다시 새 걸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럴 수가 없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쓰다가 망가지면 버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열심히 살되 상처받지 마라.

시련을 겪더라도 실패를 하더라도

상처받지 마라.

행운이 따르고 인정을 받더라도

자만하지 마라.


우리는 지우개가 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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