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번트엄버 May 30. 2023

열무비빔국수

봄을 지나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그칠 즈음

청명하다 못해 먼지하나 없는 날씨와

태초의 밝음과 같은 햇빛이 시전 되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생각 나는 음식이 있다.


설탕의 단 맛과 참기름의 고소함.

 적당히 익은 열무김치를

넣어 만든 열무비빔국수가 그것이다.


음식에 대한 기억들은 다소간에 차이는 있지만

계절과 그에 상응하는 음식. 그리고 온도와 기억

따위들이 버무려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열무비빔국수는 나에게 있어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이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청년의 화가 시절.

작품을 한다고 하루종일 밥도 먹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에 매진하던 나는

늦은 점심으로 열무비빔국수를 먹곤 했다.


미대재학 시절 지하 작업실에서

쫄쫄  굶다 먹던 약 3인분 가량의 열무비빔국수는

주린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었다.


지금도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 계절이 다시 오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그때청년의 패기와 다짐들은

이제 온대 간데없지만

그 맛만은 기억에 박제되어

다시금 그 계절이 오면

찾아 먹곤 한다.


그때 그 열무비빔국수를 매년 먹을 수 있는 건

엄마가 계셔서  매년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녀석은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 녀석인가?


나를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가주고

느슨해져 있던 사고와 게을러져 버린

나를 단단히 고무시키기도 한다.


치열하게 열심히만 살았던 시절.

청년 예술가가 꾸던 그 달콤하던 시절로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고맙다. 나의 열무비빔국수야.

엄마표국수야 앞으로도 부탁한다.

작가의 이전글 후암동 비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