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지나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그칠 즈음
청명하다 못해 먼지하나 없는 날씨와
태초의 밝음과 같은 햇빛이 시전 되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생각 나는 음식이 있다.
설탕의 단 맛과 참기름의 고소함.
적당히 익은 열무김치를
넣어 만든 열무비빔국수가 그것이다.
음식에 대한 기억들은 다소간에 차이는 있지만
계절과 그에 상응하는 음식. 그리고 온도와 기억
따위들이 버무려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열무비빔국수는 나에게 있어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이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청년의 화가 시절.
작품을 한다고 하루종일 밥도 먹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에 매진하던 나는
늦은 점심으로 열무비빔국수를 먹곤 했다.
미대재학 시절 지하 작업실에서
쫄쫄 굶다 먹던 약 3인분 가량의 열무비빔국수는
주린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었다.
지금도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 계절이 다시 오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그때청년의 패기와 다짐들은
이제 온대 간데없지만
그 맛만은 기억에 박제되어
다시금 그 계절이 오면
찾아 먹곤 한다.
그때 그 열무비빔국수를 매년 먹을 수 있는 건
엄마가 계셔서 매년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녀석은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 녀석인가?
나를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가주고
느슨해져 있던 사고와 게을러져 버린
나를 단단히 고무시키기도 한다.
치열하게 열심히만 살았던 시절.
청년 예술가가 꾸던 그 달콤하던 시절로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고맙다. 나의 열무비빔국수야.
엄마표국수야 앞으로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