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친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친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순간은 아마 20번이 안될 거 같아요. 아니 10번도 채 기억하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들과 시골로 내려갈 때조차 저는 죽음이 뭔지 슬픈 게 뭔지 알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슬퍼 보여서 그걸 따라한 거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 있는 내내를 기억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인사하고 그들을 바라봤습니다. 누구는 다급하게 들어와 꺼이꺼이 울고 누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와 즐겁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슬픔의 모양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슬픔을 보며 아버지의 슬픔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했습니다.
3일 내내 아버지는 슬픈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나와 같이 할아버지와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어도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식들 앞이라서 가족 앞이라서 울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3일 동안 아버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형, 누나, 동생들과 다르게 웃으며 조문객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부자가 정말 무심하다고 생각하며 남의 일처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3일이 지나 발인 날이 되었고, 늘 시골에서 하던 것처럼 할아버지도 상여를 하였고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은 상여꾼을 하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아버지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만큼은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펑펑 우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아버지가 비로소 우리 아빠라는 것을 되뇌었습니다. 그때 저는 슬픔이 우리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슬픔은 할아버지가 하관하여 비로소 땅으로 연결될 때 나의 슬픔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죽음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아빠처럼 아버지도 나처럼 꺼이꺼이 어깨를 들썩들썩. 그 순간 저와 아빠의 모습이 연결되어 멀리서 보였습니다.
아래 죽음과 슬픔의 의미를 보시고 여러분의 죽음 그리고 슬픔의 시작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죽음
사전에서는 죽음을 “생명이 있는 것이 그 기능을 잃고 끝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전에서는 죽음을 어떤 시작과 끝으로 말하지만 우리가 겪게 되는 죽음은 그렇게 단정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은 한 사람의 끝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모든 이들의 어느 한 부분씩 소거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슬픔
사전에서는 슬픔을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해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사전적 의미에서와 같이 슬픔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상태의 농도를 한 가지고 설명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슬픔의 모양과 농도는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는 울음으로 나오기도 하고 침묵, 웃음으로도 표현되기도 합니다.
어떤 슬픔은 농도가 옅어서 바로 흐르고 어떤 슬픔은 매우 짙어서 아주 늦게, 아주 크게 도착하기도 합니다.
저는 죽음이 먼저 출발한 기차, 슬픔은 그 길을 따라가는 다음 기차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을 통해 떠난 사람과 그리고 남은 사람과 결국은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