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침대에 누워 이 뜨거운 마음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아빠가 이기면 아이는 세상을 알고 아빠가 져주면 아이는 아빠의 마음을 알겠지?'
운전대를 잡고 무심하게 내뱉은 남편의 대답에서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요즘 남편은 사춘기 아들과 전쟁 중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렇듯 남편은 아이들의 교육이나 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성품이 온순한 남편은 그저 '허허' 웃거나, '그래 그렇게 해라'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병원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남편이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전반에 관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동안 그렇게 무심하고 너그럽기만 하던 남편은 이제 훌쩍 커버린 고등학생 아들의 삶을 정면에서 보게 된 것이다.
부모가 만들어 놓은 그늘 아래 얌전히 앉아 말 잘 듣던 아이를 자기 몫을 해 내는 성숙한 어른으로 키워내는 일이 쉬울 턱이 있을까? 자녀의 사춘기는 부모를 도를 닦는 수행자의 삶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부모가 도 닦는 삶을 집어치우는 순간 뜨거운 불길이 일어나며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결국 부모도 아이도 시커먼 잿더미 속에서 상처 입은 채로 서 있게 될 뿐이다.
또래보다 늦게 찾아온 아들의 사춘기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매운맛이 났다. 아빠를 닮아 워낙 유순한 아들이었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렸다. 똥고집, 나태함, 생각 없음, 계획 없음, 대책 없음. 이런 모습이 보편적 사춘기 남학생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내 아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남편은 아들의 이런 모습에 여러 번 걱정과 충고를 남겼지만 아들은 알았다고 대답할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거칠고 치열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아들을 생각할 때 남편은 아버지로서 걱정스럽고 답답했던 모양이다.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봄 햇살 쏟아지는 공원 계단이 아니라 칼바람 부는 들판에서 가위바위보를 해야 하는 삶이기에 남편은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얼마 전 병실에서 잘 준비를 하는데 딸이 전화가 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빠와 오빠가 큰 소리로 싸운다는 전화였다. 결국 남편이 꾹꾹 눌러온 뜨거운 화를 아들 앞에서 거침없이 토해 내친 것이다.
재잘거리는 딸의 설명을 들으며 그 사소한 일에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아빠의 마음도 그런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아들의 마음도. 이 소식을 재빠르게 전하는 어린 딸의 마음도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었다.
늦은 밤 전화로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진정시키느라 나도 함께 이 전쟁을 치른 것 같았다. 앞으로도 남편과 아들은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뜨거운 싸움을.
이날 남편이 아들에게 쏟아부었던 뜨거운 화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뜨거운 마음 이었음을 안다. 이 싸움에서 가끔 아빠가 이기면 아들은 세상을 더 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빠가 져 주면 아들은 아빠의 그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것이 이 싸움의 최종 목표가 아닐까?
잠이 달아나 버린 늦은 밤, 병원침대에 누워 이 뜨거운 마음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