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빛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반짝이는 사람들이었다.

by 정미리

내가 살았던 동유럽의 작은 나라 세르비아는 지금도 나에게는 그리움과 아쉬움이다.

봄부터 실컷 먹었던 체리와 혼자서는 도저히 들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수박, 무엇보다 가난했지만 자족할 줄 알았던 그 나라 사람들이 그립다.


그곳에서 나는 아주 열심히 살았다. 한국인은 어딜 가나 한국인이었다. 느긋하게 걸어가며 아무에게나 인사를 건네는 그곳 사람들과 달리 나는 눈앞에 닥친 현실을 해치며 달려 나갔다. 작은 키에 새까만 머리카락, 작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나는 외모만 이방인이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 또한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이방인이었다.


세르비아의 여름은 정말 더웠다. 그래도 습도가 낮아 그늘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그날도 아침부터 서두르느라 여름날의 필수품인 모자조차 들고 나오질 못했다. 머리 위로 여름 햇살이 쉴 새 없이 부서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해가 뜨거웠다.


가방, 모자, 머플러, 각종 액세서리를 파는 우리 가게는 사실 잡화점이었다. 나는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가게로 걸어갔다. 다른 가게들보다 일찍 장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재촉을 받으며 걸어가던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멈춰졌다.

낡은 상자 위에 몇 가지 조잡한 물건들을 올려놓고 나무 그늘 아래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모자 하나로 겨우 피하며 물건이야 팔리든 말든, 누가 집어가든 말든 태평하게.

나를 멈춰 세운 것은 할아버지의 태평함이었다. 세상 급할 것 없이 느긋하게 낮잠을 자는 그 모습 앞에 다급했던 나의 마음이 무장해제 되었다. 그 태평함이 나를 잠시 쉬게 했다.


우리 가게 앞에는 아침부터 나와 장사하는 할머니들이 여럿 있었다.

텃밭에서 수확한 토마토나 파프리카,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달걀들을 가지런히 놓고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렸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가도 발을 동동거리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안 팔리나 보다 하며 웃었다.


어떤 할머니는 꽃을 팔았다. 누가 봐도 시골 들판에서 아무렇게나 꺾어 온 꽃이었다. 오후가 되어 시들어 가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시든 들꽃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신기하게도 그 꽃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저녁 식탁에 꽃을 장식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정신없이 살아가던 나를 잠시 쉬게 해 준 할아버지, 저녁까지 남아 있는 토마토가 불쌍해 냉큼 사서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으며 걸어가게 해 준 할머니, 기필코 시든 꽃을 사서 저녁 식탁을 장식하게 해 준 그들이 그립다.


그들은 나에게 반짝이는 사람들이었다. 젊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적응과 생존만이 목표였던 타국에서 나를 잠시 쉬게 해 준 사람들, 그럴지라도 주위를 돌아보며 살게 해 준 사람들 외로운 식탁을 꽃으로 장식하게 해 준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나에게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외롭고 힘든 삶이 그들이 있어 반짝반짝거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잠시 쉬게 해 준다면, 웃게 하고 나누게 한다면 우리는 모두 빛나는 사람들이다.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고급진 모습은 아닐지라도.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누군가에게 빛나는 사람으로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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