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를 심는 용기와 의지를 생각해 본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해계획을 세운다. 단기적 계획뿐 아니라 인생의 장기적 계획까지.
해결해야 할 일들 앞에선 플랜을 세우고 심지어 플랜 B까지 세운다.
나는 MBTI에서 S와 J가 많이 발달한 사람이다. 그래서 40년 넘게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인생에 아무 계획이 없다. 단기도 없고 장기는 더더욱 없다.
요즘의 나는 내 인생을 위한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내가 만약 또다시 재발해서 입원이나 수술을 해야 한다면 아니면 그것도 힘들어서 아예 영원히 잠들어야 한다면 내가 세운 계획들이 나를 보며 씁쓸하게 웃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니깐 좋은 점도 있다. 그것은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돈을 쓸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먼저 맛있는 음식이나 디저트를 사 먹을 필요가 없다. 달콤하고 이쁜 디저트들은 대체로 내 몸에 좋지 않다. 매운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야식을 할 수도 없으니 그 흔한 배달앱도 설치할 필요가 없다.
맛있는 커피를 사 먹을 필요도 없다. 커피를 마시면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쁘고 비싼 옷도 필요가 없다 그런 옷을 입고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병원 가는 데는 편한 옷이 제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30대에 내 인생에 큰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예상치 않은 질병으로 모든것을 중단시켜야 했다. 그 후에 치료가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인생후반의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것 또한 중단해야만 했다.
내가 세운 인생계획을 내가 스스로 접어야 할 때. 모든 노력과 수고가 의미 없어지던 순간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들은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애써 온 모든 것들을 중단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 그것은 어찌해 볼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그런 아픔을 경험하게 될까 지금도 두렵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의 굳은 의지를 오랫동안 생각해 봤다. 그 꺾이지 않는 의지와 희망에 대해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나의 삶이란 작은 소행성이 끝을 알면서도 나는 그 땅에 한 그릇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까?
나는 여전히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가 두렵다. 한치 앞도 알수 없기 때문이다 . 내가 부단히 노력한다해도. 모든것을 쏟아 놓는다 해도말이다.
나는 내가 심은 사과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붉은 열매를 따 먹고 싶다. 내가 드린 시간과 노력의 댓가를 내가 누리고 싶다. 이 당연하고도 이기적인 마음때문에 나는 사과 나무를 심을 수가 없는것 같다.
삶의 끝날 앞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용기와 결단에 대해서 또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살아져도 남을 사과나무를 기억하는 것,
그 열매를 따 먹을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사과나무를 심는 수고로움 주는 뿌듯함.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그런 사과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심을 수 있는 지구 위 사과나무란 생각에 도달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