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잘한다는

by 정미리

못 본 사이에 훌쩍 자라 있었다.

이제 중학생이 됐다는 그 아이와 마주 앉아 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학교생활과 친구 그리고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런 대화밖에 할 수 없는 나를 꼰대라고 할까 봐 나는 공부에 대한 질문들은 가급적 조심했다.

그런데 키가 훌쩍 큰 아이가 앙증 많은 얼굴로 대답했다

" 공부는 조금 잘하는 편이에요"

이렇게 자신 있게 대답하는 걸 보니 정말 잘하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의 대답이 그렇게 신뢰가 가지는 않았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너무 멀기 때문에.

그래도 분명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하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조금 잘한다는 그 말이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뭐든지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포기할 수도 없고 더 잘하기는 너무 힘든 어느 지점에서 하루 종일 헤매야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너무 많고 노력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도 공부를 남들보다는 조금 더 잘했다. 그 조금을 넘어서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공부 말고 다른 길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결코 아주 잘하지는 못했다.

조금 더 잘한다는 것은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지 못하게 했고 다른 곳을 보지 못하게 했다.

나의 눈과 마음에 족쇄를 채운 것이다. 그 족쇄는 조금 잘했던 내가 채웠다.


어른이 된 나는 중1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온 " 공부는 조금 잘해요"하는 말이 너무 슬프다.

조금 잘하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는 너무 슬프지 않게 뭔가를 아주 잘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변하지 않는 어느 지점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헤매지 않았으면 좋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