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 때문에 세르비아 남부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수도 베오라드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는 대부분 농촌이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침 안갯속에서 건초더미들이 군데 군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부지런한 농부는 건초더미를 마차에 옮기며 손을 흔들어줬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고 급하지 않았다.
평화로웠다.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은 밤새 이슬을 맞으며 나를 기다린 풍경이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산자락마다 빨간 벽돌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치 달력 속 사진 같은 평화로운 유럽의 농촌마을이었다. 펑퍼짐한 치마를 입고 머릿수건을 쓴 아줌마들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 집에 잘 어울리는 안주인의 얼굴로.
며칠을 그곳에서 지냈다. 풍경도 사람도 평화로웠다. 아무 생각 없이 더 오래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나는 그 태평함과 여유로움 사이에서 기분 좋게 허우적거렸다. 그들이 차려준 밥을 먹고 대화하며 느꼈던 넉넉함과 따뜻함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그들은 확실히 욕심이 덜했다.
요즘도 밤이면 나는 베란다에 매달려 코를 킁킁거리며 밤 냄새를 맡고 깜깜한 세상을 구경한다. 사람소리는 없고 벌레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가장 높은 층인 7층 베란다에 매달려 있으면 한라산이 가깝게 보인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진 곳마다 봉긋하게 오름들이 수십 개쯤 나타난다.
얼마 전 새로 생긴 도로에는 차들이 거이 달리지 않는다. 길게 늘어선 가로등 불빛만이 어디까지가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인지를 알려줄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평화로운 밤 풍경이다.
깜깜하고 평화로운 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세르비아 남부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풍경이 생각난다.
아름답고 깜깜한 밤 풍경 앞에서 나는 욕심을 부릴 수가 없다. 더 욕심을 부리면 사라질까 살짝 겁도 난다.
이 밤과 산과 나무들, 오름도 나도 서로 욕심이 없어지는 신기한 밤이다.
평화로움은 풍경이 아니라 욕심이 덜한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