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손을 잡고 방긋방긋 웃는 귀여운 아기. 까만 눈동자에 뽀얗고 하얀 얼굴, 앵두 같다는 말이 딱 맞는 빨간 입술을 가진 남자 아기였다. 아기를 좋아하는 딸은 그 발사되는 귀여움에 호들갑을 떨었다.
나도 내 딸도 아기 엄마도 아기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나누느라 그 여자아이를 보지 못했다.
7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시샘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어찌해 볼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듯 보였다.
저 어린 누나는 얼마나 힘들까?
교육학자들은 둘째에게 사랑을 빼앗긴 첫째를 왕좌를 빼앗긴 왕에 비유하던데...
저 어린 나이에 느끼는 갑작스러운 상실감은 얼마나 어렵고 거대한 감정일까?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비단 시간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알지 못했던 여러 감정을 알아갈 때가 아닐까?
나이를 먹어도 그런 감정들을 배우지 못한다면 성숙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저 여자아이를 자라게 하는 감정은 상실감이 아닐까?
어리기만 한 여자아이를 누나로 자라게 하는 상실감.
나만을 위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나눠야 할 때
간절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 상실감과 자괴감속에서 우리는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프고 나서 많은 것들을 중단했고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 큰 욕심이 아니었는데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많음을 알았다.
그때마다 느꼈던 상실감과 무력감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 속에서 약한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을 배웠다
수용이란 삶의 자세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묵묵히 그리고 꿋꿋이 나의 삶을 살아갈 힘을 주었다.
약함과 부족함을 수용하며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나 자신에게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늘도 애쓰고 있는 어린 누나에게 꽃을 보듯 환하게 웃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