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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Mar 04. 2024

Ep 06 신성한 선물을 품고 산다는 것

이 어린애 같은 단순함에 나는 감동한다 - 쇼펜하우어



직관적인 마음은 신성한 선물이고, 합리적인 마음은 충직한 하인이다. 우리는 오직 하인만 존경하고 신의 선물은 잊어버리는 사회를 창조했다.                                                                      

by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밥상을 차려 놓거나, 쿠키나 빵을 구워 놓고 웅이를 부르면 신난 웅이가 쪼르르 달려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와, 맛있겠다!"


잘 차려진 밥상을 보거나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다양하지만 웅이는 항상 여섯 살 꼬마 아이처럼 음식에 걸맞은 가장 단순한 단어인 ‘맛있다’를 콕 집어 내뱉는다. 그러고서는 음식이 맛이 없으면 ‘맛없어’ 란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음식이 맛없는 이유에 대해 싱겁고 짜고 맵고 등의 수식어를 따로 곁들여 설명하지 않는다.


내가 "왜 맛이 없어?" 물으면 "그냥 맛이 없어. 아무 맛이 안 나"라고 맛에 대해 가장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느낌을 전한다.


이러한 대화는 사실 비단 음식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일적인 대화를 제외하고서는 웅이의 표현은 대부분 간결하고 단순하다. 영화나 재밌는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이거 재밌다.’ 즐거운 계획을 앞두고서는 ‘신난다’, ‘기대된다’ 등의 표현을 자주 한다. 본인 감정에 대해 돌려 설명하지도 않고 구구절절한 부연설명도 따로 없다. 웅이는 최소한의 간결한 단어를 사용해 그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인간이 느끼는 직감의 중요성에 관한 책을 읽었다. 조세프 응우옌의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는 책이다. 책에서 말하는 생각과 사고는 다른 개념인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생각(Thought)’은 ‘주어지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력하거나 힘쓰지 않아도 그냥 일어나는 일, 그렇기에 마음속에서 생각이 떠오르는 일을 통제할 수는 없다. 반대로 ‘사고(Thinking)’는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두고 ‘생각하는 행위 (act)를 뜻한다. 여기에는 많은 양의 에너지, 노력, 의지력 등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사고는 인간이 겪는 모든 심리적 괴로움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웅이의 감정 표현법은 책에서 말하는 노력 하거나 힘쓰지 않아도 되는 ‘생각’에서 비롯된 표현법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완전히 ‘사고’ 중심적 인간형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웅이에 비하면 ‘사고’에서 비롯된 표현법들을 자주 쓰고 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이건 이래서 별로야’, 무언가가 맘에 들더라도 ‘이건 이렇기 때문에 맘에 들어’ 하는 식의 표현들 말이다. 말의 주변에 항상 뭔가 이유를 변명처럼 갖다 붙여야 내 생각이 완전하게 전달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일지 모른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사실 내 감정은 이미 마음속으로 정답을 알고 있을지 모르는 데 말이다. 기쁨, 슬픔, 불편함, 설렘 등 다양한 감정은 생각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몸속에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몸에 올라온 이 감정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노력과 에너지를 써가며 ‘사고’를 하기 시작하고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애써 열심히 설명하려 하다 보니 말은 길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표현에 대한 이유를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고 전해줘야 하는 상황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웅이와 내가 일상에서 연인으로서 나누는 모든 대화의 표현들에서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줘야 한다면 인생이 참 피곤해질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깊고 진지하게 나눠봐야 할 대화를 제외하고서 일상에서 매일 벌어지는 저녁 밥상을 두고 하는 대화 같은 경우 정도는 ‘사고’가 아닌 ‘생각’의 감정 표현을 솔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사이에 있어 맛있으면 그냥 맛있다고만 해도 충분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맘에 안 들어’ 란 표현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웅이에게서 ‘맛있다’란 말을 여러 번 들어왔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해 이보다 짧고 간결한 표현이 있을까 싶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여러 번 들어도 전혀 질리지가 않다. 그리고 그 말은 그 어떤 유명한 요리 잡지에 실린 저명한 셰프의 논리 정연한 저널보다 나를 훨씬 기쁘게 한다.


그런 김에 오늘의 글은 '사고’를 버리고 직감을 가득 담아 마무리해 봐야겠다.


‘웅이가 내가 한 음식에 대해 맛있다고 해줘서 기쁘다! 행복하다! 또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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