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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Mar 11. 2024

Ep 07 본능이 앞서는 남자, 선을 긋는 여자


웅이 부모님 댁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집을 나서려는데 웅이가 갑자기 한쪽 구석 서랍장 위에 놓여있는 로션을 보고서는 엄마를 향해 말한다.



‘엄마, 이거 뭐예요? 나 가지면 안 돼요?’

순간적으로 나는 저게 뭔지는 알고 가진다고 하는 건가하는 생각을 한다. 웅이 어머님은 갑작스러운 아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잠깐 놀란 듯싶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신다. “이거 핸드크림이야. 비싸고 좋은 거야. 너 쓸래?” 하며 말이다. 어머님의 대답을 듣고서 나도 그제야 한마디 거든다.


“웅아, 어떻게 감쪽같이 숨어있어도 좋은 건 그렇게 빨리 알아보는 거야?


같이 지내면서 핸드크림 쓰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다짜고짜 좋은 건 먼저 갖고 보는 거야?” 하며 나는 황당한 이 상황에 헛웃음을 지으며 놀려대듯이 웅이에게 말한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어머님도 나와 함께 이 황당한 상황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시고 웃으신다.


웅이는 어떻게 저 구석진 곳에 무언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게 아무리 핸드크림 일지라도 좋은 것인 줄 알았던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서 이런 질문은 웅이에게 물으면 ‘그냥 지나가다 보였어’가 그의 대답 전부이다.



그러고 보니 웅이는 냄새도 잘 맡는다. 상한 음식을 잘 알아채고, 쓰레기 냄새를 기가 막히게도 잘 맡아 쓰레기 버려진 곳 근처를 지나가기도 전에 그 근방 어딘가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도 한다.


눈도 좋다. 그저 시력이 좋은 것도 있지만 디테일을 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나는 대게 사물이나 현상의 숲을 보는 사람이지만 웅이는 그의 직업적인 부분과도 연관이 되지만 나무의 나이테 숫자까지 셀 수 있을 것 마냥 디테일을 잘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흔하게 우리는 같은 그림을 봐도 ‘아니, 이건 잘 보이지도 않는다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내가 말하면 웅이는 ‘이게 왜 안 보여, 딱 봐도 이상한데- 이 부분이 뭉개져 있어’ 라며 반문한다. 같은 인간이지만 동물적인 감각이 나보다 10배는 더 발달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또 한 가지 그의 본능적인 감각이 이끌었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때는 웅이와 만나 교제를 막 시작한 지 몇 달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그날은 나의 친구를 우연찮게 웅이에게 소개해줄 수 있는 자리였다. 우리의 식사자리에서 내 친구는 친구라면  한 번쯤 물어볼 듯한 신고식 같은 질문을 웅이에게 물었다.


“웅집사(필자)의 어디가 좋아서 만나요?”

그랬더니 돌아온 웅이의 대답은

“애를 잘 키울 것 같아서요” 라며 먹던 음식을 오물오물 잘도 먹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해 버린다.


사귀기 시작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어쩜 쉽게도 이런 말을 잘도 내뱉을 수 있는지! 친구와 나는 우리의 상식선에서 벗어난 그의 답변을 듣고서는 황당함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현실은 4년 전 웅이의 이 말처럼 정말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아이는 없지만 오랜 연애의 연장에 이어 함께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웅이의 남들보다 특출 난? 본능 감각 덕에 많이 웃기도 하고 나 혼자라면 누리지 못했을 경험을 해보기도 하는 덕을 보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당연히 비단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다. 내성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본능적인 남자랑 함께 사는 황당한 불편함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마냥 생활 곳곳에서 새어 나온다.


예를 들면 음식에 관한 그의 본능적인 충동이다. 웅이는 배고프면 일단 손에 집히거나 눈에 보이는 걸 먹는다. 그래서 내가 늦잠을 자거나 아침을 늦게 챙겨줄 일이 생기면 웅이는 이미 오레오나 감자칩 봉지를 집어 들고 먹고 있다. 간혹 젤리로 아침을 시작할 때도 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아침 메뉴일 것 이다...) 아침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눈뜨자마자 기분 좋게 젤리를 먹고 있는 웅이를 보면 아주 경악을 해버리고 만다.



내가 웅이보다 아침에 항상 먼저 일어나야 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의 건강한 아침밥상을 사수하기 위함이 가장 크다. 그렇지 않으면 젤리에 내 아침밥이 밀릴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웅아 아침밥은 중요하니까, 과자로 시작하는 건 좋지 않아’를 수백 번 말했지만, 그의 단순한 배고픔의 본능을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그러니 내가 좀 더 일찍 항상 일어나는 걸로 다시 한번 결론을 내리며 오늘의 글을 마쳐본다.


P.S. 요즘은 웅이를 다루는 짬이 생겨 과자와 젤리를 모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고 바나나를 아주 잘 보이는 식탁 쪽에 놓아둔다. 그러면 내가 좀 늦게 일어나는 일이 있더라도, 주방에서 원숭이처럼 어슬렁 거리다 눈앞에 보이는 바나나를 집어 들고 기분 좋게 먹기 시작한다. 이런 단순함을 나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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