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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Aug 18. 2024

도강



...별들도 유난히 초롱초롱한 2011년12월의 마지막날 밤.



압록강 제방 뚝 위에 다섯명의 사람 그림자가 언뜻 올라섰다가 거의 동시에 아래로 사라졌다.



톱과 도끼들을 허리에 바줄로 동여매고 지난여름 장마비에 패어진듯한 크지않은 웅뎅이에 비좁게 들어앉아 긴장된 눈으로 앞을 주시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나를 포함해 이밤에 압록강을 불법 도강하기위해 떨쳐나온 무리들이었다.



거창하게 부르면 조국이요.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지옥인 고향을 어쩌면 영영 다시 돌아올수도 없는길을 다시오마라고 기약하며 한동네 다섯명이 그룹이되어 탈북을 감행하려는 것이였다.



도강지점인 봉수까지 약 50리길을 압록강 국경연안을 따라 올라와야 되는데 혹시있게될 국경경비대원들이나 순찰보안원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썰매까지 끌고 나무꾼으로 위장하고 온것이다.



수십년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어온 전기와 땔감을 비롯한 에너지 고갈로 혜산시와 같은 인구가 밀집되어 사는 도시에서는 이미 가까운 산은 다 벌거숭이 민둥산이 된지 오랬고 돈이없고 힘없는 대다수 주민들은 위쪽으로는 보천군이나 운흥군,아래로는 삼수군의 수십리길을 여름이면 구루마를 끌고, 또 겨울이면 썰매를 끌고 나무를 해다가 땔감으로 사용하군 했었다.



특히 보천군 같이 고산성기후의 영향과 백두산 화산재와 섞인 토질 때문에 농사도 잘 안되고 겨울이 긴 지역에서는 언땅을 파헤치고 먹을것을 찾거나 풀뿌리 마저도 캐기 힘들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모양도 싸이즈도 흡사 소달구지처럼 생긴 썰매에 나무를 해서 싣고 혜산시내에 와서 팔고 그 돈으로 먹을것을 사가지고 되돌아가군 했다.



혜산시에서도 직경이 약 5cm , 길이 약 40cm되게 쪼개서 1m가량되는 끈으로 묶은 장작 한단에 그때 돈으로 300원씩이나 하는 나무값이 너무 비싸서 "사람이 못먹는 이밥을 아궁이 먹는다" 라는 말까지 생겼다.

당시 쌀 1키로에 250원였던것 같았다.


혜산 주민들중에서도 추위가 몰려올수록 가격이 오르는 땔감을 사 대는것이 벅차서 직접 썰매를 끌고 나무하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길에서 누구를 마주쳐 물어보면 나무하려 보천에 간다고 둘려대려고 썰매를 끌고 톱.도끼를 챙겨 떠났던 것이다.


다행이 설을 하루앞둔 춥고 깊은 겨울 밤이라 길에서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길 안내를 맡은 금혁이 아빠와 25살,24살 년년생 형제인 은심이와 은별이, 이제 겨우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7살이 된 준영이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명은 지금 이 나라를 탈출하려고 소꿉시절부터 물장구 치며 뛰놀았던 강...그 땅에서의 소중했던 모든 추억이 생생히 살아 물결치는 압록강이 애처로이 가지말라고...가면 되돌아설수 없다고 부르짓는듯한 느낌의 물결소리, 겨움밤  얼음장을 가르는 차가운 그 물결소리를 들으며 그래도 기어이 넘으려 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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