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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Oct 10. 2024

밀림속의 세배


글을 쓴다는게 참 어렵긴 하다.


머리에는 기억들이 생생하고 내용도 어떻게 전개해서 쓸것인지 분명히 정리는 되어있어 생각은 뻔한데 정작 내 브런치 창을 열고 쓰려면 문장을 어떻게 쓰고  문맥은 어떻게 이어야될지 막막해진다.


소설? 수기같은 그리 길지않은 장문의 글도 별로 써본 경험도 없이 화물운송직이라 일욜  빼곤 하루 24시간 낡은 중고 화물트럭 안에서 일하고 먹고자며 상,하차 대기시간에나마 한줄, 혹은 몇줄씩 쓴다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전문가들처럼 재미있게 쓸줄 몰라 아직 누구 한사람 댓글조차 없다.


하루에 많이 자봐야 세~ 네시간, 그것도 한번에 자는게 아니고 대기 시간이나 휴계소에서 잠깐,잠깐씩 자는게 전부여서 피곤에 몰려 어떤날은 그냥 건너뛸까 생각도 한다.


그러나 정말 특별한 사정이 없는이상 다른사람도 아닌 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더 어길수 없고  오는도중  숨진 그네들의 영혼의 부르짖음을 외면할수 없기에 쏟아지는 졸음을 몰아내며 누가 보든말든 한글자, 한글자 쓰고 또 쓴다.


그러니 내가 쓰는 이 글은 정말 의지 하나로 쓰는 글인셈이다.



" 음~~퉤,퉤,퉤..진짜 맛이 이상하네."


나도 금혁이아빠처럼 깨물었던 열매를 빠르게 뱉어버렸다.


그런데 준영이는 한알 통째로 입에 넣었던 열매를 아직도 우물, 우물 씹고있다.


" 야~꼬매야. 빨리 뱉어 버려라. 넌 속도 좋지 않은게..괜히 먹구 탈나지 말구."


금혁이아빠가 준영이 삼켜버릴것같아 하는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한참이나 입안에서 씹어보던 준영이는 그러는 그의 말엔 아랑곳하지않고 끝내 꿀~꺽 삼켜버린다.


" 야~임마, 먹지 말라니까. 알지도 못하는 열맨데..."


내가 준영이를 나무람하며 소리 질렀다.


" 음~첨엔 쓰겁구 비린데 한참 씹으니까 머, 먹을만 합니다.~"


" 안된다.이젠 더 먹지 말구 버려라. 너랑 생각해봐라. 이상하지 않니? 노루나 다른 짐승들이 안먹구 이게 생생한채로 그대로 남아있다는건 짐승들조차도 못먹는 열매니까 안 건드린게 아냐."


금혁이 아빠가 발로 그 열매들을 슥,슥 밀어 옆으로 치우고 눈으로  꼭,꼭 덮으며 하는 말이다.


그러네~


듣고보니 정말 맞는말이다.


준영이도 " 네~~" 하고 알았다는듯 대답하면서도 금혁이아빠의 신발에 채워 눈 속으로 사라지는 그 열매들이 아까운듯 쳐다보았다.


" 자~됐고 열매들을 이쪽에 옮기자."


엥? 옮긴다니, 어디로?


금혁이아빠가 턱짓으로 가리키는쪽을 보니 나무가지를 가지런히 놓고 눈을 다져 무슨 단 같은것을 만들어놓은게 보인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금혁이 아빠는 어색하게 씨~익 웃으며 " 오늘이 설이잖아.그래서 음식은 없지만 이거 따온 열매라도 놓구 차례라도 지내고 세배를 드리자구." 라고 하는것이다.


" ? ... "


" 너 말구는 나도 그렇구 얘네는 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셨다메.꼬매는 아빠 돌아가시구...그니까 차례를 지내자는거지..겸사 여기 산신령님한테도 얼어죽지않게 보살펴 주십사 하고 빌기도 하구..."


아~~그래서


역시 연장자가 다르다.


나는 열매를 보며 내 배고픔만 생각했었는데...


금혁이아빠는 도토리와 생열귀를 한줌 가량씩 상하거나 하지 않은것들로 올려놓고 마가목은 한송이만 보기좋은걸로 해서  단 위에 한줄로 올려놓았다.


" 따라부을 술도 없구...자~됐다. 여기 와서 서라. 초상화는 없어서 모시지 못했지만 우선  장군님께 새해 세배를 드리고 각자 돌아가신 분들한테 차례로 세베를 드리자."


우리는 온 얼굴이 성에 투성이  그대로 추위에 쪼그라든 몸을 펴지도 못하고 금혁이아빠 옆에 줄레,줄레 한줄로 나란히 섰다.


"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장군님, 올해도 만수무강 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금혁이 아빠는 인민군 군관출신 당원답게 먼저 세뇌교육의 산 모범으로 간단히 한줄 글 읽듯이 말하고는 엎드려 절을한다.


태어나서부터 평생을 세뇌교육을 받은 우리도 해마다 설날이면 의례히 초상화 앞에서 온가족이 그랬듯 그를 따라 엎드려 절을 했다.


나는 언 손이 펴지지 않아 주먹을 쥔채로  바닥을 짚고 절을 했다.


몇초간 엎드렸다가 일어난후 금혁이 아빠는 알아듣지 못할 입속말로 중얼거리더니 또 한번 엎드려 절을 올리는것이다.


아마 돌아가신 부모님께 올리는 절 같았다.


그리고는 조금전 혼자말로 중얼거리던때와는 다르게 또렷한 목소리로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 신령님.먹고 살려고 저와 어린 동생,조카들을 데리고 이 깊은 산속에 밤새 공안에 쫓겨 들어와 추위와 굶주림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굶어 죽지 않게 열매를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발 저희가 이 산속에서 얼어죽지 않고 사람사는곳을 찾을수 있게 도와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금혁이 아빠는 이렇게 말하며 일어섰다가 또 한번의 절을 올렸다.


그렇게 세번의 절을 올리고난 금혁이 아빠는 단에 올려있던 마가목 송이를 들어 장갑낀 손을로 주르륵~ 훓어 쥐더니 눈 위 여기저기 " 고수레~~고수레~~" 하며 뿌리는 것이다.


장갑위에 놓여있던 작은 마가목 열매들을 마지막 한알까지 남김없이 다 뿌리고 나서야 금혁이 아빠는 우리를 돌아보며 " 자~이제는 경호부터 부모님들한테 세배를 드려라." 라며 눈짓 한번 주고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는것이다.


나는 그가 말하던중에 (얼어죽지않게 사람사는곳을...)이라고 할때 등골이 오싹할정도로 겁이났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고 실제 상황이다.


불과 하루전  어제 저녁, 집을 나설때까지만해도 이런일이 생기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거기에다 성냥이나 라이타도 없어 불도 피우지 못하고 이 깊은 원시림 속에서 만약 사람사는곳을 못 찾는다면 정말로 얼어죽을수 있다.


겁이났다.


이제까지는 공안에 쫓기고 도망쳐오느라 깊이 생각 못해봤는데 그의 말을 들으며 갑자기 북한도 아니고 넓고넓은 이 백두원시림 속에 사람사는집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 만약 없거나 못찾으면 몇날,몇일이고 찾아다니다가 추위에 못견뎌 아무도 알수없는 이 산속에서 얼어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세배를 드려야 하는 내 차례도 잊고 그자리에 서서 초점잃은 눈으로 멍~하니 서있었다.


" 뭐하니?~~빨리 안 하구.. 할말이 생각 안나니? 그럼 그냥 아부지,엄마 건강하쇼 한마디만 하구 절을 올려라."


금혁이 아빠는 갑자기 밀려든 걱정과 근심에 잠겨  있는 내 생각은 모르고 뒤에서 재촉한다.


나는 그의 독촉에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오랜시간 병상에 누워 앓고 계신 아빠와 우리 삼형제를 먹여 살리시려고  진료소 청소일과 남의집 허드렛일을 밤낮으로 하시며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건강을 맘 속으로 빌며 엎드려 세베를 올렸다.


내가 물러서자 은심이는 은별이의 팔을 잡고 내가 서있던 가운데 쪽으로 옮겨서서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먼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 하늘에 계신 아버지,엄마, 이 추운 겨울에 별이까지 데리고 나선 내가 우둔한 년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아버지,엄마가... 내하구 별이만 남겨놓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린바람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구... 경호동지 믿구 따라나섰는데 여기까지 올줄 몰랐습니다... 그래두...내..어떻게든 별이는 지키겠습니다...걱정마시고 편히 계세요..크~흠..."


은심이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코를 풀쩍거리며 길게 푸념삼아 말하고는 엎드려 절을 한다.


말이 없던 은별이도 반쯤 얼굴을 가렸던 수건을 이리저리 손으로 내리며 입을 열었다.


" 엄마. 걱정마...나는 항상 언니랑 같이 있을께...배고파도.. 추워도..난 언니랑 같이 있을꺼니까..엄마도 하늘나라서 아부지랑 잘 지내."


그리고는 먼저 일어선 언니보다 더 흐트럼 없고 성의있는 동작으로 천천히 절을 올리는것이다.


그리고는 울먹거리려는 언니를 위로하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은심이를 쳐다보고는 그의팔을 잡고 뒤로 물러선다.


우리가 네명 모두 뒤로 물러나고 혼자만 남게되자 준영이는 어색한듯 쭈빗하며 추위에 허리까지 구부리고 어께를 모은 자세로 머리를 돌려 나를 힐끔 쳐다보며 머뭇거린다.


" 야~~뭐, 그냥~돌아가신 아부지한테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시라고 한마디 하고... 음~엄마  앓지말고 건강하시라고 한마디 하고 절을 올려라."


내가 준영이에게 시켜주는 말이다.


" 네~~음..아부지, 하늘 나라서 편히 계십시오... 엄마, 엄마는 아프지 말고 병이 빨리 나으시오."


말주변이 없는 준영이는 거의 내가 시켜준 말 그대로 받아 읊더니 뒤에서 지켜보는 눈길들 때문에 부끄러운듯 절도 건성으로 하고는 얼른 일어나는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태어나 처음으로 집 떠나 이국의 깊은 원시림 속에서 언 열매 몇 줌을 놓고 새해 설날 세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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