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 엄마는 매탁 넘어 마주 앉은 손님의 좌,우 행길을 살피더니 날랜 동작으로 등뒤에 보자기를 덮어 씌워 두었던 술통을 꺼내 맥주컵 만한 잔에 술을 가득 따라 주었다.
사나이는 술잔을 받아 입에 대고 한 모금씩 마시고는 순대를 집어 먹으며 준영이 엄마에게 장사가 힘들지는 않은지, 집에 가족은 몇명이고 누구누구 있는지 물어 보았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어린 오누이를 키운다는 준영이 엄마의 솔직한 이야기에 그는 동정의 말을 건네며 언제 어떻게 돌아 갔는지 물어 보았다.
준영이 엄마는 혜산 역에서 조차원으로 일하던 남편이 연유를 실은 화차 방통 제동 호스를 연결 하다가 실수로 후진시킨 기관 조사의 잘못으로 기차에 깔려 숨진 마음아픈 사연을 한숨 반 섞인 한탄으로 간단히 이야기했다.
그러는 준영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장차림의 사나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슬픈 마음을 공감 하는듯 했으나 눈은 이상 야릇한 빛을 띄며 그의 신체를 유심히 일별하는 것이였다.
어릴적 부터 무용을 전공해 아이 두명을 낳았어도 아직 잃지 않은 몸매에 얼굴 또한 나이 또래에서는 내노라 할 정도로 한 인물 하는 준영이 엄마의 미모를 사나이는 썬글라스 안쪽의 눈동자로 서서히 오르는 취기와 함께 탐닉했다.
한 이십분 정도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40% 주정의 술 한잔과 순대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난 그는 천천히 일어서며 500원 짜리 지페 한 장을 꺼내 놓았다.
순대 한 접시에 100원, 술 한잔에 50원 해서 나머지 350원을 주어야 했지만 첫 손님이라 준영이 엄마에겐 잔 돈이 없었다.
돈을 받아들고 당황해 하다가 옆 매대 아주머니 한테 꾸려고 말 하려는데 그 사나이가 그만두라고 거스름 돈을 안 받는다고 한다.
그 말에 눈이 화등잔 만큼 커져 쳐다보는 준영이 엄마를 보고 그는 앞으로 자주 들릴 터이니 그때 계산해 주어도 된다며 손 한번 쳐들어 보이고는 가버리는 것이였다.
같은 순대 장사를 하는 옆의 아주머니들은 횡제를 했다는 등, 인물 값 한다는 등, 그런 사람 조심해야 된다는 등의 부럼 절반 시샘 절반으로 얘기들 했지만 준영이 엄마는 그 사나이가 다녀간 이후 하루 종일 기분이 들떠 있었다.
스물세살에 시집을 와 6년만에 남편을 잃고 어린 두 자식을 의지해 살면서 흘러간 3년,
그동안 시골의 친정 엄마도 다시 내려오길 원했고 옆에서도 재가를 들라고 귄유 했지만 천성이 어질고 착한 준영이 엄마는 죽은 남편이 물려준 집을 떠나서 올라 갈수 없노라고 친정엔 잡아뗐고 때로는 남자 사진까지 들고 오며 재가를 부추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럴생각 전혀 없다고 물리치군 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왕성한 나이에 이성에 대한 생각이 아예 나지 않는다고 할수는 없었다.
상처한 이후는 그렇다 치더라도 점점 시간이 흐르고 아물어 가는 마음속 아픔에 반해 저도 모르게 찾아드는 외로움과 고독이 몰려 들때면 더욱 그랬다.
너무 일찍 어린 자식들을 남겨놓고 돌아간 남편이 원망 스러웠고 정신적 기둥이 되여주고 기댈 언덕이 되여주던 애들 아버지의 그리움을 다른 사람이 메꿔 줄수도 있지 않을가 라는 생각이 간혹 들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떠나간 남편에게 죄된 마음이 앞서 그런 생각을 멀리 했고 두 자식의 얼굴을 보며 힘들고 지칠 때마다 찾아오는 유혹을 물리치군 했었다.
어쨌든 정장 차림의 돈 많은 사람이 마수거리를 해 주어서인지 의외로 그날은 일찍 순대도 다 팔렸고 준영이와 미영이에게 간만에 노트도 몇권씩 사다 주었다.
그런데 며칠후,
예전 그 시간쯤 되였을 무렵, 정말로 그 사나이가 또 나타났다.
멀리서 부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그를 옆의 아주머니가 먼저 알아보고 말했다.
" 어이~새 애기, 저기 전번에 왔던 그 남자 또 오~오 "
준영이 엄마는 그 아주머니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쪽을 얼결에 돌아보다가 놀랐다.
그 사나이는 장사꾼 아주머니들이 자기를 보며 뭐라고 수군대는 모습엔 아랑곳 하지 않고 곧장 준영이 엄마 매대로 오는 것이였다.
" 준영이 엄마, 잘 있었소? 음~ 술 한 고뿌에 순대 한 접시 주오. 이쪽 지나 다니면서두 한번 들린 다는게 요새 회사일이 바빠서..."
사나이는 전번에 준영이 엄마가 이야기 도중에 우리 준영이 라고 피끗 말 한것을 기억하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것 처럼 말을 걸었다.
준영이 엄마는 속으로
( 원~~참. 기억두 좋네.그런데 들린다는건...전번에 못준 거스름 돈 때문에? 그리구 회사라니...무역회사? )
북한에서는 무역 부문이나 그와 연관된 업체들 외에는 회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보통 직장 또는 공장 이나 기업소 라고 한다.
준영이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항상 가지고 있었던 돈 350원을 꺼내 사나이에게 내밀었는데 그는 돈을받자고 일부러 온건 아니라며 단숨에 술 반 컵을 캬~~하고 들이키고는 순대를 집어 들었다.
그러면서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짓고있는 준영이 엄마에게 자기는 인민무력부 산하 철송 무역회사 에서 지도원 으로 일한다며 갈색 표지로 된 증명서 까지 꺼내 보이며 소개를 했다.
그러면서 당시 혜산시에서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나 간부들이 산다는 압록강변의 7~8호동 아파트에서 산다고 했다.
회사로 출퇴근을 하면서 장마당쪽을 지나다니는데 요 며칠 무역교섭 때문에 중국에 출장갔다가 어제밤 왔다며 약간 뽐내는 투로 이아기 했다.
그런 그의 이야기에 준영이 엄마는 속으로 내심 부러워 하며 다시 찾아주어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사나이는 손을 회~회 내 저으며 인사는 자기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순대를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며 그래서 오늘 또 이렇게 찾아 왔는데 역시 준영이 엄마의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며 큰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 해도 손색이 없겠노라고 칭찬했다.
준영이 엄마는 얼굴이 빨개 지도록 부끄러웠으나 큰 무역회사 지도원의 말이라 듣기 싫지는 않았다.
그날도 사나이는 예전처럼 또 500원 짜리 지페 한장 꺼내 주고는 거스름 돈을 받지않고 사라졌다.
그 이후로 사나이는 이틀, 혹은 삼일에 한번씩 자주 나타나 준영이 엄마의 술과 순대를 축 냈으며 번마다 팁을 듬뿍 주고 갔다.
처음엔 많이 부담스럽고 께름직 하기도 했으나 준영엄마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런 돈을 할수없이 받아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달쯤 시간이 흘러 서로 웬만한 농담도 오고가며 친숙해져 가던 어느날,
사나이는 준영이 엄마 보고 중국 장백현에 자기네 회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몇달 일 해보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 말에 놀라움과 호기심이 역역한 준영이 엄마의 얼굴을 살피며 사나이는 북한 냉면이나 하는 정도의 식당이여서 큰 요리 실력이 없어도 된다며 돈도 많이주고 간혹 회사 간부들이 식사하려 오며는 팁도 준다고 했다.
준영이 엄마는 밀수로 먹고살며 중국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동네 이웃집들을 부러워 하던터라 사나이에게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어린 자식들이 걱정이여서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사나이는 아이들을 몇달 맡길곳만 있으면 자기가 그동안 용돈을 먼저 대 주겠다는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