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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Aug 08. 2024

준영이

                         


" 경호야~ 경호야, 준영이 왔다. 빨리 일어나라 "

부엌에서 아침을 지으시며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다.



불이 잘 들지 않아 동지섣달이라 일컫는 12월의 한 동삼에도 우리 집은 아침 저녁으로 출입문을 열어놓고 첫불을 지핀다.


겨울 바람을 비유해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라고 한다.


하다면 우리집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황소바람, 아니 고래바람이  한번에 밀려 드는것인가?


끼니를 지으실 때마다 거꾸로 쓸어나오는 연기 때문에 어머니는 늘 추위에 떠시며 아궁이에 연거퍼 부채질을 해야하고 기침과 함께 눈물을 흘리셔야 했다.


당장이라도 손질하고 싶지만 우선 시멘트랑  자재도 없거니와 한 겨울에 구들장을 들어내면 침상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는 어디에 모시고 나머지 우리 세 식구는 또 어디에 거처할것인가.


하는수 없이 봄날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 형님이 내 보구 늦지않게 오라구 하구서는 아직도 안 일어 났습니까? "



밖에서 준영이 연기땜에 비스듬히 열어놓은 출입문 사이로 안쪽을 들여다 보며  하는 소리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아직 덜깬 잠을 억지로 털며 김밥속의 단무지 처럼 옆에 있던 어머니 이불까지 끌어다가 돌돌 말아 덮은 이불속에서 겨우 머리를 내밀고 눈을떴다.


밤새 아래위 눈꺼플  사이에 떡 들어붙어 말라버린 눈곱 때문에 이마에 밭고랑 같은 주름을 잔뜩 치켜 만들며 겨우 눈을 뜨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내의들을 찾아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며 부엌쪽에 대고 말했다.



" 으 음~~주~운 영이 왔니 ? 빨리도 왔다. 준영아~쪼꼼만 기다려라.내 인차 옷 입고 나간다."



먹이를 끌고 굴속으로 사라지는 너구리처럼 속 내의들을 찾아쥐고 이불속으로 들어간 나는 추워서 밖에는 못 나가고 그속에서 선뜩선뜩한 속옷들을 끙끙거리며 끼어입고 다시 나왔다.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5시 정각이다.



( 짜식,빨리도 왔네.이 시간에 오자믄 쉽지 않았을 긴데 )



도 군사동원부 뒤쪽에 단층주택에 위치한 준영이네  집에서 혜강동에 있는 울집까지 걸어서 약 십분거리다.


얼추 계산해보니 네시 좀 지나서 일어난듯 싶다.


오늘 첫 날이라 단단히 각오한 모양이다.


준영이 나이 올해 17살, 이제 약 한달만 지나면 한살 더먹어 열여덟이다.



그도 나처럼 집안의 맏이고 손아래 누이동생이 있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한지 1년밖에 안되는 앳된 나이지만 다섯살에 아빠가 기차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 또한 심장병으로 거의 병석에 누워 지내다 싶이하니 어쩔수 없이 집안의 가장이 되여 그 어린 나이에 위로는 어머니 병 시중을 들고 아래로는 여동생을 보살피며 일찍 철이 들었다.



사실 그의 엄마는 중국에 속히워 팔려 갔다가 구사일생 으로 도망쳐 오면서 병을 얻었다.



수년간 계속되는 극심한 식량난에 온 나라 거의 모든 민생이 풀 뿌리와 나무껍질로 목숨을 이어가던 십여년전 세월.



숱한 아사자를 낸 굶주림과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하나 어린 두 남매를 지켜내려고 준영이 엄마는 장마당에서 순대 장사를 시작 했었다.


돼지 잡는 집에서 내장을 외상값에 가져다가 밤을  새며 순대를 만들어 내다 팔고 남는돈 몇푼으로 세 식구의 하루 식량을 잇댔다.


가마에서 순대가 익어 꺼낼 즈음이면 그 냄새에 자다가도 일어나 가마목에 조롱조롱 앉아 군침을 흘리는 준영이와 미영 ( 준영이의 누이 동생 ) 에게 선뜻 한토막 잘라 주지  못하고 멀건 국물밖에 줄수 없는것이  눈물 나도록 한스러웠다.



그렇게 순대 장사를  시작한지 며칠 안되던 어느날,



하루는 금방 가마에서 쪄낸 순대를 가져다가 꺼내는데 멋진 정장차림에 검은 썬글라스 까지 낀 잘 생긴 신사가 다가와 김이 몰~몰 나는 순대를 보며 한 토막 잘라 달라며 먹고 가겠다고 했다.


준영이 엄마는 첫 마수거리에 돈 꽤나 있어보이는 남자가 사주겠다고 하니 속으로 ( 얼씨구나~) 하고 없는 아양까지 떨며 순대를 썰어 주었다.



그 사나이는 준영이 엄마가 내미는 순대 접시를 받아 매탁에 놓고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술 파는게 있냐고 물었다.


장마당 음식 장사치 치고 술 안파는 이가 없었지만 시장 담당 보안원이나 비사회주의 그루빠 성원들의 단속  때문에 내놓고 팔지는 못했다.


매대 뒤에나 밑에 감춰두고 있다가 손님이 찾으면 가만히 꺼내서  한 병씩, 혹은 한 잔씩 팔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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