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Jan 12. 2022

아픔은 자각 이후에 고통으로 변한다

페이스북부터 시작해서 블로그를 통해 내 삶에 대한 글을 끄적인 것도 어언 4년 정도가 되었다. 아무래도 CPTSD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찬 글들로 보일까 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6년 전 본격적으로 다시 상담을 시작했을 때 난 내 속이 곪아 간 것이 내 탓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성정은 본디 이렇다. 그냥 살아있기에 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 하는, 그게 나에게 있어 삶의 원동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잦은 비교와 비난속에 시달리다 보니 그걸 내면화시키는 바람에 ‘채찍질’을 가장한 자기혐오에 평생 시달리긴 했지만.


난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 ‘내 아픔의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되물어 본 적이 없다. 내 삶이 항상 극한 상황에 처해서 그랬던 이유인지, 나에겐 그런 질문조차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이 육신이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해진 것이 싫었기에 아이러니하게 죽도록 나를 갈아 넣어서 보통인 삶의 궤도에 올려놓고 싶었을 뿐.


기르케고르의 ‘Either/Or’를 읽던 중 그리스 비극에서 주체는 자신이 처해진 사고에 그 정당성이나 원인을 묻지 않으니 그의 슬픔(sorrow)은 극대화되고 현대 문학에선 주체자가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니 그에겐 고통(pain)이 더 극대화된다라는 내용을 보았다.  


자신에게 처해진 비극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 자각 이전에 상태에선 그 아픔이 애절하고 먹먹하고 추상적이다. 이는 마치 나의 20대를 설명하는 거 같았다. 절망에 몸부림쳤지만 자각하지 못했었다. 내 아픔을 나는 스스로 말로 내뱉을 줄 몰랐고 애절한 노래 가사나 음악의 선율 이런 추상적인 예술 표현에 기대곤 했었다.


더 자세히 알게 되고, 책들을 찾아보고, 내 기억의 파편들을 다 조합해다가 재구성을 해보니 이제야 내 비극에 결정적 원인들을 제공한 ‘인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고 그 그림이 확실해지는 순간 과거의 내 고통들도 더 선명해졌다. 자각 이후 내 아픔은 상처 그 날것이 되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애절해 보이지도 그 어떠한 로맨티시즘도 찾아볼 수 없다.


날것의 역겨움이 올라온다고 해야 할까. 부모가 나에게 보여준 인간 말종의 모습,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도망 다니며 남들에게 굽신거리면서 바퀴벌레 같이 살던 시절, 제발 하루 만이라도 진정한 인간처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에 청원하던 순간들, 부모의 실패를 내 원죄라고 믿고 살아온 세월.. 이 모든 게 다 뒤엉켜서 온갖 썩은 내가 진동하는 거 같아 플래시백이 올라올 때마다 몸 서리 쳐졌다.


나는 여태껏 살면서 내가 뭘 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잦은 이직으로 자소서와 이력서는 주기적으로 써내려 갔기에. 내가 어떤 시기에 어떤 성과를 냈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타이틀을 달고 있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내 자신에 대한 내러티브가 아니었다. 클리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점수, 랭킹, 경력의 길이라던지 이런 수치들은 전혀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해 줄 수 없다. 이런 것들이 자아에 대한 척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뜬장님처럼 이게 내 내면에 행복에 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했었지.


도리어 내가 누구 인가를 따질 때 나는 살면서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고 어떻게 (어떤 마음과 다짐) 살아왔는지는 잘 몰랐다. 유년시절의 학대로 인해 나와 세상에 대한 스탠스가 정말 뒤틀려져 버렸고 과거에 그 상황들을 떠올리는 것은 상당한 멘털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자각을 위해 몇 주간을 앓느니 내 무의식이 자동적으로 차단을 해버리기도 했다.


작년 초반 이맘쯤 내 아픔을 ‘자각’하는 시기를 가졌는데 책에서 보고 느낀 바가 있어 플래시백 한 두 개를 나름 분석도 해보고 풀어 보고 몇 주간 해본 것이 결국 9개월가량 지속되었다. 곪아 버린 것을 찢어 고름을 빼보려니 그걸 다 뽑고 헤집어 놓지 않는 이상 멈추는 건 존재하지 않더라. 일주일에도 며칠을 울어대고 부은 눈으로 컴퓨터를 켜고 다음날 일을 하고 그게 내 코로나 팬데믹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원치도 않은 내면의 사혈치료(?)를 9개월 지속하고 나니 이제 뇌에서 과거를 소환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차단시켜버리더라. 덤으로 아주 찰나의 순간에 과거와 연관 지어 깨달음을 얻은 것도 자주 잊어버린다. 마치 꿈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것과도 같아서  메모를 하거나 이렇게 장황하게 블로그 글을 쓰는 것 밖엔 답이 없는 거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