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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Jan 05. 2022

생존 모드

이제는 이 삶의 모드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젠 생존 본능에 의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가꾸겠답시고 내 모든 걸 갈아 넣는 그런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적인 삶의 모드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 부모는 그야말로 어디 가서 내세울 거 하나 없는 가방끈 짧고 근성도 없어 한우물을 파는 그릇이 못 되는 인성 파탄난 커플이었다. 부부 싸움은 그들의 레저였고 그 어떤 이웃도 의식하지 않은 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거리까지 나와 유세를 떠는 건 물론이요. 엄마라는 인간은 꼴에 가게 주인 이미지는 유지하고 싶었는지 망해가는 가게 명줄을 빚잔치 내어 근근이 유지하고 있었기에 동네 어느 사람도 우리 집이 하층민일 거라곤 생각 못했겠지.


젊은 날 어떤 꾸준한 노력도 없이 한량처럼 살다가 만난 둘은 어디 가서 목소리 크게 낼 자신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특출 난 재능도 없었고, 노력으로 메꾸려는 의지도 없었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남에게 기대는걸 항상 우선으로 하는 데다가 집안까지 걸림돌이었으니 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내 부모의 간판이 되길 요구받았다. 그들의 보잘것없는 모습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가 바로 나였다. 나르시시스트로써 현실 파악은 못하고 이상만 거대했던 내 엄마는 어릴 적부터 나를 두고 ‘이 집안을 일으킬 사람은 오직 너뿐이다’라는 말을 못이 박히도록 했으니, 적어도 그녀의 30대부터 엄마는 구질구질한 삶에서의 출구를 본인 스스로 찾기보다는 자식을 통해 찾길 바랬다.


어린 나는 세상 외부에 가서 내 존재와 능력을 확인시키지 못하면 엄마에게 갈구하던 사랑과 보살핌을 못 받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세 가족 모두의 운명을 내가 망칠 수 있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살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이 무게에 눌린 체 항상 주눅 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외동딸로 부모의 지지와 사랑을 받아서 세상 밖인 학교로 나아가야 할 판에 나는 어린 나이부터 선생님들에게 칭찬받고 좋은 성적을 받아 오지 못하면 집안에서 어느 따스한 말도 기대할 수 없었으니.


세상 물정도 모르는 7살 나이부터 밖에서 내 능력을 증명하는 시험지며 배지며 야금야금 모아다가 그걸 집으로 가지고 가 엄마에게 사랑으로 바꿔먹는 그런 비상식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가족이 주는 따스함은 어린 나에게 있어 너무 간절했고 살아갈 이유였기에 내 존재를 증명하는걸 그저 쉬엄쉬엄 할 수도 없었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그 길 뿐이었다. 하지만 부모는 그걸 사랑으로 바꿔주지도 않았지.


수년 전 내 부모들 인생에서 나란 존재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글로써 끄적인 적 있다. 내가 있었던 없었든 간에 그들만의 그런 구질구질한 부부싸움을 이어갈 것이고 그 어떠한 일확천금으로 경제적인 면을 구원해준들, 그들의 추악한 인성은 어디 가지 않을 것이다.


30년을 가정에 화목과 안정이 오길 바라며 나 자신을 갈아 넣었지만 그들의 절망적인 모습에 내 노력과 수고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질 못했다. 불법체류 신분에서 그들을 구제해주어도, 신용이 전혀 없는 그들에게 집을 살 수 있게 대출을 받아주어도 그들의 싸움은 젊었을 때 보다 더 졸렬하고 괴랄하게 변질되는 것만 같았다. 항상 가난 때문에, 신변의 문제 때문에 가정에 금이 가는 거라고 노래를 불러 대던 엄마는 더 이상 왜 그들이 싸우는지 이제 이유조차 대지 못했다.


괴성을 지르며 집안은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싸움을 통해 이성을 잃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짐승이 우두머리 자리를 독점하기 위해 본능에 온 몸이 지배당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런 싸움을 통해서 서로가 아직은 아드레날린이 분출이 되는 그래도 쓸만한 몸뚱이를 가진 존재인지 확인을 하고 흡족해하는 것만 같았다. 싸움을 하지 않고 지내는 일상은 죽은 생선의 눈깔을 하고 남의 집 거실 바닥 마대질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런 좀비였기에 180도 변하는 그들의 모습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빠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그런 무의미한 삶에 슬롯머신이라는 양념이라도 쳐보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영혼에는 절망도 아닌 이제 죽음이 드리우고 있었고 그냥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너무 명백히 보였다.


나는 그들의 간판을 자처하는 삶을 이제는 살지 않아도 된다. 그들에겐 더 이상 그들의 추잡한 모습을 가릴 보호막이 필요 없다. 그 어떤 두꺼운 보호막도 그들의 추잡한 민낯을 가려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기생하는 이상 구원은 신기루라는 걸 이젠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가서 필사적으로 남 앞에 내세울 만한 타이틀을 얻고 노동하며 그렇게 부모의 남은 일생을 위해 네 인생을 헌신해라. 그렇게 하더라도 널 내 자식으로 인정해 줄까 말까이니.’라는 메시지가 내 삶을 지배했던 모토였다는 걸 깨닫는 데 십수 년이 걸렸다.


이전까지는 왜 내가 시험이나 면접에서 미끄러지고 학사경고를 받을 때마다 왜 세상이 끝이 나는 기분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남들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니까 나도 그저 평범한 좌절을 겪는 줄 알았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경험하는 건 평범한 좌절감과는 너무 달랐다. 내가 하는 조그마한 실수에도 내 감정의 곡선은 널을 뛰고 마치 죽음에 가까워지는 공포를 느꼈으며 계획 아래 한치의 오차도 허용안 되는 그런 엄격한 잣대를 내 자신에게 들이대며 평생을 내가 나를 노예 부리듯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나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바로 ‘세상 밖으로 나아가서 가장 그럴듯한 메달을 받아와야지 부모의 보살핌을 얻을 수 있고 그래야 네가 삶을 연장할 수 있다’라는 왜곡된 믿음이었다.


부모는 나에게 어떠한 애정도 줄 마음도 없는걸 애초에 알았다면, 그 말만 번지르르한 변명과 가스 라이팅에 당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죽자살자 세상에 뛰어들어 무엇인가 되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그런 부모 밑에 자란 갓난아이에게 어떠한 소용도 없는 상상인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그것이 그 시절 나에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숙명적 믿음이었다.


삼십 중반이 되어 느낀다. 지금 내가 커리어며 학력이며 내 평생 무엇인들 쌓아 올렸든 간에, 그 시작부터 불순한 의도로 시작되었다. 부모의 따스한 온기로 생존하기 위해 나는 내가 기울이는 모든 노력에 내 사활을 걸었고 조그마한 오차에도 나는 삶과 죽음을 오가는 그런 극단적인 감정의 파도에 휩싸였다. 내가 이뤄놓은 그 어떤 것도 나는 내 것이라며 흡족해하고 나 자신에게 건배를 할 수 없었고 내 노력에 어떠한 지원도 안 해준 그 추잡한 손에 그 명예를 고스란히 넘겨야 했다. 매일 가는 등굣길, 출근길 또한 살 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발을 옮겼고 하루에도 수번을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에 사로잡혀 온몸이 떨렸다. 나하고 맞지도 않는 가정에 우연에 의해 떨궈진 그 이유 만으로 평생을 생존 모드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정서적 학대는 물론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자녀들은 평생을 이런 생존 모드로 살아간다. 이 생존 모두에선 개인이 만드는 모든 자잘한 선택이 그들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세울 만큼 그들의 세상은 모래성같이 불안정스러우며 하루를 연명하는 느낌으로 살아간다. 또한 자신이 살면서 일궈낸 그 어떤 것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마저 사라지게 한다. 당연히 내일 일어나 살아가야 할 이유마저도 딱히 모르겠다. 하루의 마지막 또한 내 신체를 완전히 축을 내서 잠에 골아 떨어트려 내일을 맞이하게 한다.


평생을 이렇게 살다 보니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조차 이런 방식을 계속 영위하게 될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존 모드로 사는 것은 사람을 갉아먹기에 정신병동 신세, 식이 장애, 은둔 생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게 바뀌었는데. 나를 지지하는 가족의 온기도 이제는 체험하고, 삶의 속도 또한 많이 더뎌졌으며, 환경도 그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그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생존 모드의 삶이 내 새 인생을 오염시키는 것을 더 이상은 잠자코 볼 수만은 없다.


나는 이제 생존을 위해서 아등바등 살 이유가 없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스러운 말인가 싶지만. 어린아이의 마인드로 내 부모에게서 따스함을 얻기 위해 죽자살자 내보이기 위한 삶을 만들어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는 그 시절 어린아이 었던 나는 부모가 뭘 원하는지 항상 우선시하는 바람에 자신이 뭘 원하는지 생각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 기억 속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부모의 말을 거슬러 살아가려는 내 팔목을 붙잡고 울부짖으며 제발 그러지 말라며 애원을 하고 있다. 그 아이에게 그 믿음은 잘못되었다 이야기해주고 싶다. 눈을 바로 뜨고 부모에게서 정말 진심 어린 관심, 지지 그리고 사랑을 받아 본 적 있는지 되뇌어 보라 말하고 싶다. 그들의 영혼에는 절망, 끝 그리고 죽음만이 드리워져 있노라고. 그리고 어른이 된 내 품 안으로 이제는 들어와 그렇게 그리던 행복을 누리면 된다 말해주고 싶다. 너는 그들과 너무 달랐고 그들에게 너무 과분했던 아이였다. 너에게 당연했던 행복을 어른이 된 이 언니가 다시 되찾아 놓았으니 이제 더 이상은 숨죽이며 살지 않아도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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