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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Nov 22. 2021

복합 PTSD (Complex PTSD)

복합 PTSD의 변형과 해리 현상

매체에선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고비, 경제나 커리어상의 좌절, 가족의 죽음, 결혼의 실패와 같은 것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독감 같은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망연자실하게 된다. 무수한 유튜브 비디오나 기사들이 항상 빼놓는 사실은 이런 독감 같이 지나가는 우울증과 같은 경우 환자에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서적 회복력도 어느 정도 있다는 사실이다. 만성적으로 불안과 우울을 겪는 이들에겐 이 탄성(resilience)의 부재로 인해 불필요하게 계속 넘어지기를 반복하는데 말이다. 그들의 삶은 마치 모래 위에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만성적으로 우울과 불안이 따라다닌다는 것은 마냥 단순하지가 않다. 진단명이 불분명할 경우 한 가지의 기분장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여러 가지 형태로 수없이 변형되면서 수십 년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엔 복합 PTSD라는 진단을 서른이 넘어 받기까지 내가 앓는 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만성적인 정신문제로 뭉뚱그려 알고 지내며 살아왔다. 이 병 자체가 딱히 치료에 있어 골든 타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종의 정리 강박으로 시작했다. 3-4학년부터 다이어리나 일기를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 글씨체가 맘에 안 들어서 공책을 수어 번을 찢는 탓에 공책 자체가 너덜너덜 해져서 포기를 한다던지 책상 서랍장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다 뒤집어 엎어서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민생활을 하며 언어와 적응 문제, 같은 한인 학생으로 인해 따돌림을 두 번이나 당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 결국 어릴 적 강박이 외모에 대한 강박으로 옮겨가 식이장애가 생겼는데 대략 3년간 거식과 운동 강박으로 인해 탈모와 심장, 숨쉬기에 무리가 오기 시작하자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그만두었다. 하지만 수년 뒤에도 이 식이장애는 다시 찾아와서 경미한 형태로 7년간 지속되었다.


나는 어떠한 정신과 상담도 이 시절 받지 않았고 (부모가 나르시시스트 성향이고 본인의 지병에만 몰두했던 시절이라서 당연한 걸 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난 후 서적이나 매체에서 나오는 정보를 통해 내가 대략 이런 종류의 불안을 기반한 장애들을 겪었구나 추론하는 것이다.


내 기본적인 베이스는 불안장애인데도 불구하고 대학에선 major depressive disorder/ 극심한 우울증이란 진단을 받게 되었다. 휴학했던 시절을 포함한 대학 첫 3년간은 적성에 안 맞는 학교 생활, 부모의 통제, 비자와 돈 문제 등이 다 겹쳐서 생활고 자체만으로도 내 삶에 있어 가장 힘들던 시기였다. 이때 처음으로 극심한 이인증을 겪게 되었다. 유체이탈 체험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공황장애의 패닉으로 자주 나타났다. 이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이 시절 나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다고 착각을 했다. 이 외에도 우울증이라면 찾아오는 대사장애, 사회적 은둔, 극단적 사고와 끊임없는 자기혐오 같은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양상을 다 보였다. 밑에서 서술할 해리 현상 중에 내 등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있는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 있는데 이 시절 나는 이것에 대한 개념 또한 몰랐고 정신과의 한테 이를 잘못 설명을 하는 바람에 조현적 에피소드를 동반한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아서 항정신병 약을 몇 년간 먹어야 했다. 외모 강박이 아닌 자기혐오와 인생에 대한 포기를 기반한 식이장애 또한 수년간 지속되었다.


사실 생각을 더듬어 보면 지속되는 부부싸움, 비자 문제로 인해 신원미상 신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부모가 외부인과 항상 마찰에 빠진다거나, 부모가 지병으로 사경을 헤맸을 때, 경제적인 문제로 난항을 겪을 때마다 해리가 항상 따라다녔는데 이때까지는 이러한 해리 현상으로 인해 현실감각이 퇴행한다기보다는 그저 그런 상황에 처하면 누군들 겪는 리액션처럼 치부를 하고 넘어가버렸다.


해리(dissociation) 특히 이중에 이인증이란 시공간이 뒤틀려버리는 듯한 인상을 받아 현실에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수시간, 심하게는 며칠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거리를 걸어갈 때 주변 사람들이 마치 ktx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 겁을 먹게 된다던지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거 같고 제어 능력을 상실한 거 같은 인상을 받는다거나 걸어오거나 운전을 하면서 도중에 어느 루트를 지났는지 어디에 들렀는지 기억 또한 부분 상실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제삼자가 마치 내 등 뒤에 서서 날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를 극으로 몰아세운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는 환청과는 다르다. 마치 만화에서 주인공이 기로에 서면 어깨 한쪽에는 천사가 다른 쪽에는 악마가 앉아 왈가왈부하는 그런 장면이 나온다. 약간 내 양심과 악한 생각이 상생하는 그런 것과 비슷한 뉘앙스이다. 어떤 이들은 하늘에서 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인상을 받을 때도 있다 한다.


이는 흔히 말하는 PTSD 환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잔상이다.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극심한 강도의 충격을 세부 정보들로 나눠서 시각적인 것은 시각적인 것 대로, 청각적인 것은 따로, 후각적인 것은 따로, 사건의 시간적 흐름, 상황의 전개 같은 것들을 뇌에 완전히 저장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이런 경우 순간 뇌는 그 끔찍한 상황을 어느 식으로 든 그래도 최대한 괜찮은 상황으로 만들고자 나름 합리화시켜서 환기를 시키고자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인증과 같은 체험이다.


예를 들어 복합 트라우마 같은 경우에 어릴 적 근친상간을 지속적으로 당하는 경우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아이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신의 정신이 구름 위에 떠서 참담한 일을 당하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그 시절 기억을 그 관점으로 저장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본인에게 어떠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현실을 꿰뚫어 보고 있는 선지자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 봤자 고통을 피하기는커녕 이미 일어난 일들을 인지를 하고 소화를 시켜야 한다는 것에서 그만큼 겪어야 할 심적인 고통의 양만 가중이 될 뿐이다. 자신과 자신의 몸이 처해진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분리를 시키고 생존을 위해 현실을 부정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면에선 dissosiative identity disorder (해리성 인격장애)와 강약 빈도만 다를 뿐이지 그 궤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기억은 파편화되고 이런 파편들이 간혹 가다 예고도 없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럴 때 해리나 이인증이 같이 동반되어 찾아온다. Dissociation 진단 검사가 따로 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수시간 차를 몰고 목적지에 도착해도 왜 내가 여기에 와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해서 왔는지 기억을 못 하는 등 정말 심했는데 그때는 ptsd 환자의 평균 선상에 있었을 것이다. 현재는 많이 좋아져서 자가 테스팅을 해도 경계선 인격장애보다 약간 더 높은 점수가 나오더라.


개인적으로 십 년 이상을 SSRI 계열의 항우울제를 복용을 했지만 이인증 (derealisation)이나 신체와 정신이 분리되는듯한 증세 (depersonalisation)엔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벤조 디아 팜 계열의 약물은 오남용의 문제도 무섭기도 하고 특유의 사람을 굼뜨게 만드는 현상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까 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PTSD 서적들은 약물로 트라우마 관련 기억이 돌아올 때마다 고통을 줄이는 것에 대해 거의 비관적 스탠스를 비추는 편이 많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모든 약물과 치료방법을 섭렵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가장 호전되기 힘든 부분이 이 해리 현상이다.


되리어 나 같은 경우엔 명상이나 내 관심을 한 곳으로 둘 수 있는 취미 생활을 가지는 방향으로 내 시간을 쓰기 시작한 뒤 그리고 남을 의식해서 원치도 않는 스케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 않고 오로지 내 자신만 돌보는 방식으로 살기 시작한 후 부터 증세가 많이 호전 되었다.  플래시백의 빈도도 많이 줄고 그 플래시백이 어떤 기억과 연관이 있는지 파악까지도 가능하며 그 강도도 많이 줄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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