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하는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다가도 이따금 우울함과 무료함이 한 번씩 나를 찾아왔다. 자유 시간을 즐기며 그 시간을 즐기는 스킬 또한 늘어갔음에도 말이다.
첨엔 믹스커피 한잔의 여유가 전부였던 자유 시간은 드라마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것으로 확장됐고, 때론 딸아이 친구 엄마들과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간다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며 활동 반경 또한 넓어져 갔다. 또, 영화를 보거나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도 쌓았다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래, 행복이 뭐 별거 있어! 내가 즐거우면 되는 거지.’
소소한 행복에 만족한 채 일상에 안주하며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전날 딸아이 친구 엄마들과 만나 신나게 수다를 떨어서인지 다소 피곤했던 아침이었기에 집에서 쉬며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계획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여느 때처럼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곧장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멜로드라마로 채널을 맞춘 뒤 이내,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으로 빙의한 채 한참을 몰입하며 세 편의 드라마를 몰아봤고, 그 여운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나만 바라봐주는 남자 주인공으로 인해(여자 주인공으로 계속 빙의되어 있는 중) 행복을 만끽하며 마음까지 몽글몽글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분명 신나게 드라마를 봤고 그로 인해 정말 행복했는데 시선이 시계에 머무는 순간, 그 모든 감정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뭐야? 벌써 1시라고?’
허무하게 지나버린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며 갑자기 우울함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공허한 느낌마저 들었다.
‘휴…….’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신랑이었다.
‘밥 먹었어? 난 밥 먹고 다시 일하는 중. 뭐 해?’
그냥 매번 주고받던 일상의 물음이었다. 하지만 난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신랑은 요즘 잦은 야근과 외근으로 인해 많이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일을 하건만 신랑에게 밥도 거르며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고 말하기가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심지어 남주에 푹 빠져 마음까지 몽글몽글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나도 아이가 오면 또다시 육아와 티 안나는 집안일에 매달려야 하는 나름 바쁜 대한민국 주부라지만 혼자만 편한 시간을 누린 것 같아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 시간을 즐기는 내게 신랑이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육아로 힘들었다며 쉬라는 말을 많이 했고, 내가 사람들을 만나며 타지에서도 잘 지내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타지로 직장을 잡은 신랑을 따라 모든 걸 포기한 채 지역을 이동해 왔기에 자신이 출근한 사이 홀로 있는 나를 신랑은 늘 걱정했다.
‘난… 뭐 그냥 있지. 아침 대충 먹어서 이제 점심 먹으려고.’
신랑에게 얼버무린 답톡을 보내고 나니,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우울함은 극에 달아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더 흐른 뒤, 현실이 자각됐다.
‘미쳤나 봐. 나래 올 때 됐는데.’
어느새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멍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기다리고 있던 집안일을 서둘러하곤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또다시 바쁜 주부의 삶이 시작되며 우울함과 무료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레 사라졌다.
하지만 이따금 그 감정들은 주기적으로 날 다시 찾아왔고, 그 속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서 내가 하던 식품 품질관리 일을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 복직하는 거야!’
아직 아이에게 손이 많이 가긴 했지만 어린이집에서 퇴근 시간까지 아이를 케어해 준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사실, 결혼을 하며 이직을 준비할 땐 아이가 생겨도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아이를 기다리며 일을 포기했을 때도 언제든 내가 원하면 다시 복직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막상 육아를 해보니 혼자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워킹 맘들은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난 친정과 시댁에서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엄만 연로하셨기에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으셨고, 언니들은 출가해 지역별로 흩어져 조카들을 키우며 자신들의 삶을 살기도 바빴으니 말이다. 또, 시어른들은 신랑이 어릴 적부터 자영업을 하셨기에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
이런 현실을 알고부턴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이젠 아이가 어느 정도 컸고, 봐줄 수 있는 시설이 있기에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신랑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나 다시 일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어? 그럼, 나랜?”
신랑은 깜짝 놀라며 아이를 먼저 걱정했다. 아직은 손이 많이 간다는 것도, 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아서인 것 같았다.
“이제 어느 정도 커서 괜찮지 않을까? 어린이집에 있다 내가 퇴근할 때 데려오면 되잖아.”
신랑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곤 정말 괜찮은 자리가 있음 그때 고민해 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전보다 더 많이 힘들 거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도 회사를 다니며 경험했기에 그 생활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일하고 싶은 맘이 요동치는 이상,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아이를 등원시킨 뒤 오랜만에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검색 사이트에 ‘잡코리아’를 검색했다.
‘분야 > 식품 품질관리’
이력서를 수정하고 업데이트를 하는 게 먼저였지만 채용 공고가 얼마나 뜨는지, 요즘은 또 어떤 자격을 요구하는지 궁금했기에 검색창에 식품 품질 관리를 입력해 채용 공고를 확인했다.
취직이 힘든 시대라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자리가 올라와 있었고, 괜찮은 조건의 회사들도 꽤 많았다. 그중 난 한 회사를 클릭해 모집 요강을 확인했다.
<신입, 경력직 모집>
‘난 경력이 5년 이상 있으니까 신입은 아니지. 그렇다고…….’
경력이 있긴 했지만 공백기가 있기에 경력직으로 보기도 참 애매했다. 이미 현업에서 벗어나 조금은 긴 공백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경력만큼이나 긴 공백기를 갖고 있는 나를 기업은 써 줄까?’
대답은 ‘no’였다.
내가 고용주의 입장이라면 같은 나이의 경력자가 한 명은 5년, 한 명은 10년의 경력을 가졌다면 당연히 현업을 쭈욱 이어온 10년이란 경력을 가진 사람을 뽑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이 많은 신입도 원치 않을 테고.
내 상황만 되면 언제든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단 걸 새삼 깨달았다.
빠르게 지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느새 난 ‘경단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