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햇살 Oct 18. 2024

일상에서의 안주... 그리고 사랑

지금이 좋아

 목표가 사라지고, 맘속 열정이 조금씩 식어간 건 대기업에 입사하고 그곳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난 뒤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없이 좋았고, 점차 일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며 일상에서의 안정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교 다닐 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었지만 대기업에 취직하곤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엄만 항상 기뻐하시며 딸을 자랑스러워하셨다. 엄마 말씀을 빌리자면 난 그 자체로 ‘엄마의 기쁨’이었다.


 언니들도 모두 출가해 가정을 꾸리고, 막내딸인 내가 취직하고 안정을 찾으니 더 이상 엄만 생계에 연연하며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됐다. 물론,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어하시는 엄마 성격상 소소한 일은 일흔이 넘어서까지 하시긴 했지만 치열했던 삶 속에서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것과는 마음의 무게가 달랐을  같다.


 학교 다닐 땐 내가 취직만 하면 엄마가 돈을 물 쓰듯 쓰게 해 드리겠다고 다짐했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취직해 돈을 벌어보니 돈을 펑펑 쓰게 해 드리기는커녕 결혼 자금을 위해 소소하게 적금을 붓고, 생활비를 하기도 월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엄만, 나보다 더 적은 돈으로 우리 여섯을 어떻게 키우셨을까?’

 통장을 지나 휘리릭 빠져나가는 월급을 볼 때면 새삼 우리 여섯을 키운 엄마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곤 했다.


 일상에 안주해 버린 난, 목표와 함께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던 ‘고생하시는 엄마 호강시켜 드리기’를 엄마께 맛있는 음식을 사드린다거나 가끔 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것으로 대체하며 스스로 완벽히 목표를 달성했다고 치부했다.


 사실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시는 엄만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거나 좋은 곳에 가시면 ‘아고, 엄마가 너희들 덕분에 호강하네.’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기에 은연중에 그리 생각했던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때 난, 내가 하고자 했던 것도 어느 정도 이뤘고 엄마도 편안해 보였기에 일상에 만족하며 지냈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쓰지도, 아등바등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며 지내던 그 무렵, 내게 사랑이 찾아왔다.

 

 “너도 나올 거지?”

 크리스마스이브 날,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린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으로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친군 중학교 때 친했지만 어떠한 이유로 연락이 끊긴 아이들과 인터넷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연락이 닿았다며 모임을 추진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 나도 꼭 왔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그 아이도 온다는 말을 덧붙였다.


 친구로부터 그 아이의 이름을 들으니 그 아이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알게 된 그 아인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니 내게 짓궂은 행동들을 하며 장난을 쳤다. 그땐 그 아이가 장난치는 게 싫었는데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게 관심의 표현이란 걸 알게 됐다.


 우린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그 아인 계속해서 연락하며 간간이 만남을 청했다. 그때까지도 난 그 아이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던 중 수능을 앞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인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고백이란 걸 해왔다.

 “사실, 나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어!”

 ‘장난치는 건가? 오늘이 만우절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엔 친구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난 평소와 너무도 다른 그 아이의 모습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도망치듯 그 아이와 멀어졌고 계속해서 걸려 오는 전화도, 문자도 모두 무시했다. 그렇게 잠수를 타며 그 아이를 끊어냈다. 더 이상 친구로 지내는 건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감정이 성숙해지며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나 같았으면 상처 많이 받았겠지? 우연히 만나도 아는 척하고 싶지 않겠지?’

 먼저 연락해 볼까 고민도 했지만 차마 용기 내지 못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러 우린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었다.

 그런데 모임에 그 아이가 나온다니 애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가서 사과라도 해야 하나? 무시하면 어쩌지?’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머물렀다.


 “나 봐서라도 꼭 나와! 알겠지? 그렇게 알고 있는다!”

 친군 막무가내로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모임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사과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고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건장한 남자가 됐을 그 아이의 모습이.


 그리고 모임 당일, 친구가 말해준 장소로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먼저 도착해 어색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 이미 어느 정도 모인 후에 들어가는 게 조금 덜 어색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착하니 친구들과 그 아인 먼저 와 있었고,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내가 밉겠지? 휴…… 그래도 이번엔 내가 먼저 아는 척하자!’

심호흡을 크게 하곤 성큼성큼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그 가 내게 인사했다.

 “잘 지냈어?”

 또다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얼굴이 닳아 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나도 인사를 건넸다.

 “응, 난 잘 지냈지. ?”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만났고, 내가 친구에게 맘의 빚을 지고 있었음에도 얘기할수록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건 그 아이더 이상 여자로 보지 않아 편하게 대해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치……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싫다고 잠수를 탄 건 맘을 접어버린 것 같은 그 아이에게 서운함몰려왔다.


 하지만 최대한 마음을 숨기며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다음날 출근을 위해 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 앤 날 배웅해 준다며 따라 나왔고, 수줍게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핸드폰 번호 뭐야? 알려 주면 안 돼?”


 그때 난 확신했다. 아직 날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이 오해였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다시 만난 순간부터 나도 그 아이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후 그 아인 끊임없이 연락해 왔고 우직하게 나만 바라봐 준 정성 때문인지 나도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니, 이미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불현듯 찾아온 사랑으로 인해 일상에 안주하던 내 삶은 더욱 완벽해졌고, 그렇게 나의 20대는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