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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햇살 Oct 11. 2024

뜻밖의 행운

 편입을 준비하며 솔직히 조금 흔들릴 때도 있었다. 이미 대학 생활은 충분히 재밌었고,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좋았으니 말이다. 더욱이, 노력하면 과에서 1등도 가능하단 걸 알았는데 모든 걸 뒤로 한 채 꿈 하나만 보며 알 수 없는 길을 선택한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인생의 쓴 맛을 알고 나니, 이따금 한 번씩 ‘정말, 편입이 더 나을까?, 내가 바라던 대로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늘 꿈보다 현실이 앞섰던 상황 속에서 이번만큼은 꼭 꿈을 먼저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배의 조언 앞에서 굳건할 것 같던 내 꿈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난 여느 때처럼 꿈을 버리고 현실을 선택하며 식품 공학과에 남기로 마음먹었다.

 이따금 꿈을 포기했다는 게 마음 한 편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이 선택이 옳은 거야.’라며 맘을 위로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전공과목을 수강할수록  식품 공학에 대한 흥미가 높아지며 전공이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하고 싶은 것, 꿈도 다시금 생기게 되었다.

 ‘그래! 식품 연구원이 되는 거야!’  


 난 식품 연구원이 되어 더 많은 식재료와 식품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식품 연구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해 보고, 과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했다. 그러다 식품 연구원이 되려면 학사를 넘어 석박사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알게 되었다.

 엄마께 학비에 대한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 대학교도 고민 끝에 왔건만 대학원 학비로 또다시 엄마께 부담을 드릴 순 없었기에 난 연구원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꿈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 앞에서 그것 또한 불가능이 되어버렸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3학년이 되었고, 스멀스멀 취직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진로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갔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뭐 해 먹고사냐…….’

 마땅히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생각나지 않아 우선 학과 관련 자격증을 따 놓기로 결심했다. 선배들과 교수님들께선 식품 산업 기사나 식품 기사를 따면 취직이 유리하다고, 잘하면 대기업 취직도 가능할 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품 기산 4학년이 되어야 자격이 주어지기에 산업 기사 먼저 따놓고 기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산업 기사를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레 자격증을 취득해 대기업에 취직하자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학업과 자격증 취득에 열중하던 때였다. 내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당시 학교엔 식품 관련 모 대기업 연구소에 고문으로 계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교수님이 나를 부르셨다.


 “우리 연구실로 들어와서 공부해 볼 생각 없니? 이 교수가 칭찬이 아주 자자하더구나.”

 미생물학을 담당하시던 교수님이 나를 추천했다며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와 연구를 도와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면 당신이 고문으로  연구소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식품 연구원이 될 수 있다고?’

 꿈꾸던 연구소에 취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한 달에 40만 원이나 되는 월급도 나온다고 하셨다. 당장 필요한 돈도 벌고 미래도 보장되는 정말 대박인 제안이었다.


 다음 날부터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 가 교수님 연구를 도왔다. 그곳에서 먼저 들어온 선배들과 함께 실험을 하고, 교과 외에 다른 것도 익히며 또 다른 지식도 열심히 쌓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함께 지내던 선배들은 졸업을 하고 난 4학년이 되었다.

 하지만 졸업한 선배들은 취직을 못한 채 연구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선배들도 교수님이 연구소로 취직시켜 준다고 말씀하셨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하염없는 기다림을 계속해야만 했기 때문이.


 ‘선배들도 못 가고 있는데 과연 내 자리가 있을까?’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하는 선배들을 보며 난 교수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교수님은 내게 대학원에 진학한 뒤 연구소로 오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하셨다.

 ‘진짜, 자리가 없어서 이러시는 건가? 아님, 내 스펙이 부족해서?

 교수님을 향한 의심은 극에 달하고 난 더 이상 교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 우선 졸업 먼저 하자.’

 편입을 접으며 마음 한 편에 늘 조기 졸업을 생각했었다.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자리했기에 학기마다 24학점을 꽉 채우며 조기 졸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연구실에 들어오며 더 나은 조건으로 취직하기 위해 4학년 2학기까지 교수님께 많은 것을 배우고 모든 학기를 마친 후 졸업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상황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기다린다 해도 연구소로 취직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의 난, 늘 돈과 시간에 쫓겨야 했기에 하염없는 기다림을 계속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조기 졸업을 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갔다. 그리고 다행히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1학기 성적이 나오고 졸업장이 나오기 무섭게  내 힘으로 취직 자리를 알아봤다. 잡코리아, 사람인, 교차로 등 다양한 구직 사이트를 하루에 몇 번씩이나 드나들며 괜찮은 조건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연봉이 괜찮은 중소기업이 눈에 들어왔고 그곳에 지원했다. 서류는 합격했고, 면접도 운 좋게 통과했다. 드디어 첫 직장에 입사하며 난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첫 직장은 생각보다 분위도 좋았고 일하는 것도 재밌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엔 잘해주던 상사가 갑자기 선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윤 편해서라지만 공사 구분 없이 발톱을 들어내는 상사의 행동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이직을 결심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나올 수는 없었기에 직장을 다니며 이직할 곳을 찾던 중 대기업 공채가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자신 없었지만 만에 하나란 심정으로 지원을 했고, 운이 좋게도 난 그곳에 합격했다.

 

 내가 꿈꾸던 연구직은 아니었지만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뻤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 또한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홉 명이나 되는 입사 동기가 있어 든든했고, 일도 적성에 딱 맞았기 때문이다.

 또, 직장생활을 하니 더 이상 엄마한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됐고, 엄마께 맛있는 음식과 예쁜 옷 정도는 사드릴  있어 더욱 좋았다.


 그렇게 일상에서 안정을 찾아가며 편안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한창 업무를 보고 있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조심스레 전화기를 꺼내 발신인을 확인하는 순간, 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수님?’

 내가 몸담고 있던 연구실의 교수님이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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