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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햇살 Oct 17. 2024

지켜진 약속

그랬다면 어땠을까?

 교수님께서 왜…….’

 연구실을 나오며 교수님과의 연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 힘으로 자리를 알아보는 동안 취직을 제안했던 교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인 양 느껴져 배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직해서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교수님께 느꼈던 배신감도, 그 배신감을 가져다준 교수님이라는 존재도 서서히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 또한 나를, 나와의 약속은 잊은 채 지내실 거라 그리 여겼다.


 그런데 생각관 달리 핸드폰 화면에 발신자는 교수님이셨고, 난 당혹스러워 선뜻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냥 받지 말아야겠다!

 진동을 무시한 채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다시 넣으려던 그때, 불현듯 연구실 생활과 함께 교수님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연구실 생활을 할 때 교수님께선 다정히 대해주시며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그래서 교과 외에 배운 것도 많고, 값진 경험을 했던 건 사실이다. 또, 연구실 생활이 가산점이 되어 취직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취직시켜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님과의 연을 끊은 채 걸려 온 전화마저 피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에 서둘러 교수님과 나눌 첫마디를 생각한 뒤 휴대폰 속 통화 버튼을 눌렀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건강은 어떠세요?

 “응, 그래. 잘 지냈지? 혹시 지금 취직했니?”

 교수님은 안부를 물으시곤 바로 본론을 말씀하셨다. 연구소에 자리가 하나 났는데 나를 그곳에 취직시켜 주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연구실에서 함께 있던 선배와도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던 터라 선배도 교수님의 연락을 기다리다 본인 힘으로 취직했다는 말을 들었기에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또, 순서가 있기에 내 차롄 결코 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교수님께선 한사코 선배들보다 내가 먼저 그곳에 갔으면 한다고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한지를 여쭤보셨다.


 ‘내가 먼저? 선배들은? 식품 연구원? 그럼 여긴 어떡해?

 순식간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영양사를 꿈꾸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그 후로 식품 연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대학원까지 나와야 하는 조건 때문에 그 꿈마저 접고 일반 기업의 품질관리원이 되어 나름 만족감을 느끼며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포기했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니 꿈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교수님의 말씀에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 흔들림은 아주 잠시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 놓은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직장에 취직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 만약 교수님께 연락이 온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아주아주 만약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지만. 그때 난, 교수님께 연락이 온다 해도 몸담고 있는 직장에 남아 품질 관리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구소에 가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탓이었다.


 학창 시절 우연한 기회로 교수님을 따라 교수님이 고문으로 계신 모 기업 연구소에 방문했을 때, 난 그곳에 있는 연구원들을 보며 자신감이 떨어지고 많이 위축됐었다. 지방대에 다니고 있고 그게 최종학력이 될 나완 달리 그들은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나와 내로라하는 대학교의 대학원까지 나온 정말 박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교수님 추천으로 취직한 선밴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그때도 ‘내가 이곳에 온다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지만 바라보는 꿈이 명확했고 내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고의 조건이었기죽을힘을 다하면 그들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그때완 달랐. 난 이미 취직했기에 절박하지 않았고, 품질 관리 일도 적성에 잘 맞았다.

 또, 그곳에 가려면 기숙사가 없어 월세나 전세를 구해야 했는데 사회 초년생인 내겐 그만큼의 돈이 없었다. 물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상황도 되지 않았고.


 그래서 만약 교수님께 제안이 온다면 거절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만의 하나였던 일이 정말 일어났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난 정해놓았던 답을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지금 취직한 곳에 있고 싶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교수님께선 어느 곳에 취직했냐, 어떤 일을 하고 있냐 물으셨고 내가 취직한 곳을 말하자 그곳도 충분히 좋은 곳이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며 무척 대견해하셨다.


 이따금 끝까지 꿈을 좇지 않은 그때가, 교수님께 연구소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후회될 때도 있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상황이나 현실을 보지 않고 매진했다면 어땠을까?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미래를 봤다면 어땠을까? 좀 더 나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가끔 이런 생각들이 들 때지만 지난 일에 후회하는 것이, 과거에 연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기에 그저 현실에 또다시 안주했다. 아니, 그러려고 애썼다.

 ‘이미 지난 일이고, 지금도 이 정도면 잘살고 있는 거야.’라며 나를 위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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