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어디서 볼까요?’
‘새로 생긴 베이커리 카페나 가볼까? 거기 빵이 엄청 맛있대!’
‘아, 사거리 그 카페요? 알겠어요. 그럼 거기서 만나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자마자 동네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는 딸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친구 엄마로, 아이를 등하원 시키며 알게 돼 언니라고 부르며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리고 언니를 비롯해 딸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친구 엄마 둘까지 우리 넷은 금세 친해졌고, 아이들을 등원시킨 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자유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그 모임에서도 난 집에서처럼 막내였다. 30대 초반에 딸을 낳았기에 그리 빠른 건 아니었지만 결혼이 늦어지는 사회적 추이나 둘째 엄마들이 많아서인지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 친구 엄마들과 나이를 비교하면 난 어린 편에 속했다. 그리고 친해진 사람들 역시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그들 중 난 막내였다.
그날도 새로 생긴 카페의 빵이 맛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곤 언니들과 그곳에 모였다.
“음, 빵 정말 맛있다!”
소문대로 빵은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달고 고소하니 커피 한 입 먹고, 빵 한 조각 먹으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래서인지 한참을 각자 빵에 대한 맛 평가가 디테일하게 이어지곤 평소와 같은 대화가 시작됐다.
평소 우린, 아이들의 어린이집 생활, 그곳에서의 이슈, 가정 학습을 비롯한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나눴고, 가족 얘기나 새로 생긴 마트, 맛집 등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 대화 소재의 전부였다. 아주 시시콜콜하고 때론 유치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그렇게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한참 동안 이어지다, 한 언니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이렇게 여유롭게 커피 한잔 하니깐 새삼 꿈만 같네!”
빵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은 게 언니에게 행복으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언닌 직장을 그만을 둔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전업주부로,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둘째는 딸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 둘의 엄마였다. 그동안 시댁의 도움으로 일을 하며 아이들을 케어했지만 시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어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다는 얘길 언니를 통해 들었다.
하지만 난 언니를 보면 종종 커리어가 아깝게 느껴지곤 했다. 뭐 마음만 먹으면 복직할 수 있다지만 커리어가 쌓여가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더욱이 조금만 더 고생하면 아이들은 클 테고 그땐 일에 전념하며 언니가 꿈꾸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소 그렇게 생각했던 탓인지 한껏 행복을 느끼고 있는 언니에게 속마음이 터져 나왔다.
“근데 언니, 아깝지 않아요? 경력이 계속 쌓이는 건데…….”
“나중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깝진 않아. 나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었거든.”
언닌 쉼 없이 달려와 너무 힘들었다며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언니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커리어가 아까운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맘이 표정에서도 나타났는지 다른 언니가 내게 물었다.
“자긴, 일하고 싶어?”
“전, 아이 낳기 전까지 일하고 싶긴 했어요. 아이가 크면 복직할까도 생각 중이고요. 언닌, 어때요?”
“글쎄… 난 이제 경단녀라 쉽지 않을 것 같아.”
“경단녀요?”
그때 언니로부터 경단녀에 대해 처음 들었다. 결혼 후 육아와 살림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 경단녀의 의미를.
‘그럼 나도 경단년가?’
그땐 ‘설마 나도?’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아닐 거라고 믿었다. 마음만 먹으면 나를 써줄 기업은 많다고, 나 하나 써줄 곳 없겠냐며 언니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일자리를 찾다 보니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난 영락없는 경단녀 신세였으니 말이다. 경력직이라기엔 공백기가 너무 길고 신입이라기엔 나이가 너무 많은, 신입과 경력직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경단녀직이란 곳에 서 있단 걸 깨달았다.
‘휴…….’
단전 밑부터 끓여 올려진 깊은 한숨과 함께 언니가 덧붙였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거 알아? 경단녀는 옷 입는 센스마저 경력이 단절된다더라.”
매일 집에서 살림과 육아만 하니 사람들 만날 기회가 줄어들어 센스가 한번 단절되고, 회사 생활에 필요한 오피스룩 또한 입을 기회가 없어지니 센스가 두 번 단절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땐 그 말을 우스갯소리 넘겼는데 생각해 보니 사실이었다.
가끔 옷을 살 때면 청바지에 티셔츠 같은 편한 옷을 사는 게 익숙했다.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쇼핑이었다. 그래서인지 모임에 나가거나 결혼식 같은 격식을 갖춰야 하는 곳에 갈 땐 입을 옷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옷을 사거나 어울리지도 않는 언니들 옷을 빌려 입고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름 신경 쓰고 갔는데도 내 패션은 어딘가 올드해 보였다.
애써 남의 떡이 더 커 보여서 그런 거라고, 내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흘러버린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경단녀도 할 수 있단 걸 보여 주는 거야!’
다시 한번 맘을 크게 먹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결혼 전 했던 업무를 다시 해보며, 충분히 해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었을 때 내 주요 업무는 식품 품질 관리 일 중에서도 법규 관련 업무였다. 수시로 바뀌는 법규를 확인해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했기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법제처에 들어가 식품 위생법의 개정 내용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가졌던 공백기동안 개정된 법규들을 확인해 보려 검색창에 일할 때 늘 적던 글자를 적고 엔터를 눌렀다.
법제처 > 식품 위생법
‘내가 몇 년을 했는데!’
당연히 예전처럼 법규를 확인하는 건 쉬울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빼곡히 채운 식품 위생 법규를 보고 있자니 처음 입사했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게 뭐야! 하나도 모르겠잖아!’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는데 다시 한번 경단녀가 됐음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또르르 눈물이 흐르려던 그때, 어느새 다가온 현실이 내게 말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